'치유 법원 프로그램' 적용 사건 결심…피고인 "큰 변화 느꼈다"
검찰 "성공적으로 진행됐으나 고민 필요…적절한 형 선고해달라"
법정서 음주뺑소니 피고인에 박수…법원 "성실히 프로그램 이행"
"피고인을 위해, 취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박수를 쳐주셨으면 합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말에,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달아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을 향해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이 일제히 짧은 박수를 쳤다.

검사의 구형과 피고인의 마지막 호소가 이어지는 일반적인 결심 공판과 다른 풍경이 8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허모(34)씨의 항소심 공판에서 펼쳐졌다.

이날 결심 공판을 마무리하면서 정 부장판사는 "치유 법원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피고인이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앞으로 삶을 변화 시켜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성실히 프로그램을 이행해 온 것을 칭찬하고, 선고기일까지 남은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달라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며 법정을 찾은 이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에 재판부와 검사, 변호사, 그리고 일부 방청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허씨는 지난 1월 음주운전 사고 후 달아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는 이 사건에 '치유 법원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며 지난 8월 허씨를 직권 보석으로 풀어줬다.

3개월간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허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일정 기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를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허씨가 매일 오후 10시 이전에 귀가하고, 온라인 카페에 동영상을 포함한 일일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는 보석 조건을 붙였다.

재판부는 이날 결심 공판에서 "이 프로그램은 피고인의 절제력을 키우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변화하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은 78일간 매일 활동 보고서를 올리고 금주와 귀가 시간을 준수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서는 그간 허씨가 카페에 올린 동영상 중 일부가 상영되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허씨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 등이 담겼다.

허씨는 "매일 퇴근 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미술놀이를 하는 등 즐겁게 지내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며 "다시는 술로 인해 무책임한 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실히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3개월 금주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는 일상을 보며 큰 변화를 느꼈다"면서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피고인이 술을 끊고 평범한 가장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끌며 생활하는 모습이 느껴져 이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치유 법원 프로그램은 아직 한국에 정착되지 않은 제도"라며 "기본적으로 치유는 교화나 형벌 집행과정에서 이뤄지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 봤다"고 단서를 달았다.

아울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감독을 강화할 필요는 없는지, 평가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진행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그러면서 "이미 몇 차례 음주운전 전력이 있고,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했다가 경찰관의 측정 요구에도 불응하는 등 이 사안은 가볍지 않다"며 "피고인이 보석 조건을 충실히 수행했다고는 판단된다.

이 정상을 반영해 재판부가 적절한 형을 선고해달라"고 구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내달 4일 허씨의 선고 공판을 열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