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한전 자금 혼용 말아야
노금선 < 한전 감사위원장·공인회계사 >
전기요금 특례할인은 정부가 정책상 필요한 각종 혜택을 특례로 정해 한전이 이를 부담해 온 것들이다. 전기자동차 충전 할인을 비롯해 전통시장이나 도축장, 미곡처리장 등 대상도 다양하다. 지난해 기준 할인액만 7847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취약계층, 다자녀가정 할인 등 각종 복지할인과 하계할인까지 합하면 한전이 부담하는 요금 할인액은 연 1조7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혜택받은 당사자들은 정작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한전이 미리 알아서 깎은 뒤 고지서를 보내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깎아준 줄도 모른다. 정책 실행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전 사장의 특례할인제도 폐지 발언은 단지 현 시점에서 한전이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각종 특례를 만들어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그 자체가 옳지 않다는 의미도 아니다. 기업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놓고 분명한 경계를 짓자는 취지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해야 하고, 정부는 사회 취약계층을 돌보고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공동선을 구현해야 한다.
한전은 정부가 대주주인 공기업이다. 그러나 49%의 지분은 일반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뿐만 아니라 뉴욕증시에도 상장돼 다수의 외국인·기관투자가까지 투자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한전은 되도록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해 소비자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공기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무대에서 에너지 기술 기업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 세계시장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시장도 살고 한국 경제도 산다.
우리 사회의 폐단 중 하나는 각자 위치에서 제 할 일을 원칙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의 일을 해야 하고, 정부는 정부의 할 일을 해야 한다. 에너지 복지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전기요금 할인이 필요한 대상이 있다면 정부가 다른 예산을 아껴 배정해야 한다. 한전이 기여할 필요가 있다면 요금과는 분리해 별도의 기부나 출연을 하면 될 일이다. 이 또한 한전의 이사회가 결정할 일이다.
더 이상 정부 예산과 한전의 자금이 혼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전에 정부는 대주주일 뿐이며, 한전은 정부의 일을 대신해 주는 기관이 아니다. 이것이 한전의 미래를 담보하는 올바른 지배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