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발행사가 신용등급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현재의 신용평가사 사업 모델을 폐지해야 한다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문기구가 촉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신용등급 쇼핑’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무디스, S&P, 피치 등이 지배해온 신용평가 시장의 구조가 바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EC 채권시장자문위원회가 신용평가산업에서 ‘채권발행자 지불형’ 사업모델을 없앨 것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출범한 이 위원회는 신용평가사 전 임원, 교수 등 2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신용평가산업을 조사해왔다.

이 위원회가 지난 4일 뉴욕에서 개최한 청문회에서 제프리 맨스 조지워싱턴대 교수(법학)는 “채권발행자 지불형 모델은 신용평가사가 더 좋은 등급을 주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이라며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채권을 발행하는 회사는 등급이 높을수록 더 낮은 이자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더 높은 등급을 줄 신용평가사를 찾는다. 이른바 신용등급 쇼핑이다.

이 같은 시스템은 2008년 금융위기 원인이 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신용등급 ‘뻥튀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맨스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런 사업모델을 허용하고 있다”고 SEC를 비판했다. 지난해 무디스는 2010~2016년 주택담보채권 등에 대해 신용등급을 엉터리로 매겼다가 1625만달러의 벌금을 냈다.

청문회에선 채권 투자자들이 공동 출자해 신용평가사를 세우는 방안, 채권 발행·거래 시 세금을 부과해 그 돈으로 신용평가사에 비용을 지급하는 방안 등 새 사업모델이 제시됐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