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인종 다른 선수가 단결해 성과"…"통합 촉매" 기대감
대통령 "역사적 순간"…투투 대주교 "자기회의에 빠진 나라의 믿음 회복"
'첫 흑인 주장'이 이끈 럭비 월드컵 우승에 남아공 환호(종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지난 2일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9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남아공 전체에 이틀째 환호가 넘실대고 있다.

남아공 응원단은 흑과 백, 인종에 상관없이 우승 다음날인 3일(현지시간)까지도 전국 곳곳의 클럽과 펍, 광장 등에서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남아공 럭비 대표팀의 우승은 이번이 세 번째로, 흑인과 백인 선수들이 어우러졌을 뿐 아니라 특히 역대 처음으로 흑인이 대표팀 주장을 맡아 의미를 더했다.

이 때문에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 인종차별 정책)가 종식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백 간 인종 갈등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 성격의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는 남아공에 '국민 통합'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과거 남아공에서 백인우월주의가 악명 높았던 때 럭비는 부잣집 백인들의 전유물로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흑인이 범접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일본에서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 현장에 함께 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러한 역사적 승리는 (하나가 된) 5천700만 남아공 국민의 열정적 지지 덕분"이라며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어 "이번 우승은 우리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성공을 위해 함께 나아가면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한다"고 역설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역시 남아공 럭비 국가대표인 스프링복스팀이 자기 회의에 빠진 나라의 믿음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이번 승리가 (역사에 대한) 낙관적 순간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투투 대주교는 비록 아파르트헤이트의 어두운 날들 이후 많은 진보가 있었으나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이고 (흑백) 커뮤니티 간에 긴장의 골이 깊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나라이자 특출난 국민이며, 우리 스스로를 믿고 나아갈 때 꿈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남아공 언론은 특히 127년 남아공 럭비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흑인 주장으로 뽑힌 시야 콜리시(28)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한 말을 집중 조명했다.

이스턴케이프주(州) 빈민가에서 자란 콜리시는 우승 직후 술집에서도, 농장에서도, 노숙자들도, 농촌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럭비팀을 지지했다면서 "남아공은 많은 문제도 안고 있지만,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한 목표를 향해 단결해 우승을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럭비팀의 우승에 남아공 국민들도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케이프타운 근처의 슈퍼마켓 직원인 음봉기세니 은타냐나는 "흑인 선수들은 이번에 유능하다는 점과 능력에 따라 선발됐음을 입증했다"면서 "럭비팀 덕분에 내가 흑인이자 남아공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네셈바 토큐(31)는 이번 우승으로 세계는 남아공이 인종과 민족 간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 나라'라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남아공 하면 으레 폭력을 떠올리고, 우리도 이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아파했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아공 의회도 이날 스프링복스팀의 우승을 축하하면서 "1995년 첫 우승 당시의 국민통합과 국가건설 효과가 되풀이됐다"고 반겼다.

25년 전인 1994년에야 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은 남아공은 이듬 해 자국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치켜 든 바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흑인인 넬슨 만델라가 유니폼을 입고 시상식에 등장, 백인 대표팀 주장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는 장면은 남아공 흑백 화해와 희망의 상징이 됐다.

이후 남아공은 200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럭비종가' 영국을 물리치고 두 번째로 우승했으나 이때도 주장은 아직 백인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