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전자담배와의 전쟁'
美선 사회적 문제로 '시끌'
전자담배 '보이콧' 확산
미국에서 문제가 된 전자담배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의문의 폐 질환이 805건으로 집계됐으며 1주일 새 52% 늘었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또 의문의 폐 질환으로 인해 13명이 사망했으며 이 질환은 전자담배와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자담배는 ‘액상형 전자담배’다.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찌는 방식의 궐련형,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을 수증기화하는 액상형 등 두 종류가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다시 과일향 등을 첨가한 가향(加香)과 일반 담배 맛을 내는 무가향으로 나뉜다. 궐련형의 대표는 아이코스, 액상형의 대표는 쥴이다.
미국에선 왜 액상형 전자담배가 퍼졌나
전자담배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와 쥴랩스의 쥴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선 아이코스가 먼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이코스 같은 궐련형이 아직 판매되지 않고 있다. 쥴 같은 액상형만 먼저 승인받았다. 액상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쥴은 사용법이 간단해 빠르게 퍼졌다. 현재 미국의 흡연자 중 13%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며 미국 전자담배 시장의 70% 안팎을 쥴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유해성 논란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원인 미상의’ 폐 질환 원인으로 전자담배를 지목했다. FDA는 액상형 전자담배 확산과 의문의 폐 질환 발생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전자담배가 미국 청소년의 흡연율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쥴과 같은 액상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에 비해 냄새가 덜하고 담배꽁초 등 흔적이 남지 않아 미성년자들이 부모 몰래 사용하기 편하다. 이 가운데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가향 전자담배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서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에 비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FDA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고등학생의 21%가 “지난 한 달 사이 전자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1%와 비교해 두 배로 늘었다.
폐 질환의 원인과 증상은
의문의 폐 질환이 전자담배 사용자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사실 외에는 아직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는 CDC는 환자 중 다수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마초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을 섞어 사용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대마초가 합법인 주(州)가 많은 미국에서는 전자담배에 THC를 섞어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전자담배 관련 폐 질환의 초기 증상은 폐렴 증세와 비슷하다. 대부분 기침·호흡 곤란·가슴 통증 등 호흡기 증상을 호소했고 발열, 심장박동수·백혈구 수치가 증가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일도 있다.
유해성 논란, 과거에는 어땠나
액상형 전자담배를 둘러싼 유해성 논란은 폐 질환 사태 이전부터 존재했다. 당초 연구된 바로는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에 비해 95% 덜 해롭다고 발표했다. 또 2017년부터는 흡연자에게 전자담배 사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다만 여러 대학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전자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지난 2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액상형 전자담배가 폐 기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처음 내놨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주기적으로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어느 곳이 전자담배 퇴출에 나섰나
전자담배 퇴출을 가장 먼저 선언한 곳은 샌프란시스코시다. 폐 질환 논란이 퍼지기 전인 올 6월 이미 판매 금지 조치를 내놨다. 미시간주와 뉴욕주, 워싱턴주는 이달 들어 연달아 가향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조처를 내놨다. 매사추세츠주는 내년 1월까지 모든 종류의 전자담배를 전면 금지하는 긴급법안을 가동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FDA에 연방정부 차원에서 가향 전자담배를 규제할 방안을 30일 안에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소매업계에서도 전자담배 보이콧이 한창이다. 이달 들어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창고형 할인마트 코스트코가 전자담배를 진열대에서 철수시켰다. 미국 대형 약국 체인 라이트에이드도 전자담배 퇴출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미국 외 국가로는 인도가 지난 18일 전자담배의 판매와 생산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국에서도 이달 들어 당국 지시에 따라 온라인 쇼핑몰이 전자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 정부가 다음달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20일 액상형 전자담배 자제 권고만 냈다. 이 때문에 한국 보건당국은 외국에 비해 국민 건강과 관련해 덜 적극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전자담배업계 반응은
전자담배 업체들은 미국 당국의 조치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쥴랩스는 올초까지만 해도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에 비해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자 11일 자사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보건당국 조처에 무조건 응하겠다”고 했다. 쥴랩스는 25일 케빈 번스 최고경영자(CEO)의 사임과 미국 내 홍보 활동을 전면 중단할 계획을 밝혔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