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페라 신기원 연 '1945', 예술성과 대중성 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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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1945' 세계 초연 리뷰
극장을 찾는 관객은 울거나 웃고 싶어 한다.
눈물이나 웃음으로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기능이며 가치일 수도 있다.
그 감동과 재미가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깊이를 더해준다면,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분명 더 커질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세계 초연한 최우정의 '1945'는 '창작오페라'라는 용어를 '한국오페라'로 대체해가고 있는 이즈음,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충족한 신기원으로 평가할 만하다.
음악성 있는 대본을 쓰는 작가와 극을 이해하는 작곡가의 합(合)이 한국오페라 성공의 관건이라는 사실을 '1945'의 대본작가 배삼식과 작곡가 최우정은 확실하게 증명했다.
한일관계가 경색된 현재 시점에 극 중 한국인 위안부 분이와 일본인 위안부 미즈코의 우정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1945년 만주'라는 특정 시공간의 역사에서 '연민과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신파의 시대가 배경이지만 배삼식의 극에는 티끌만 한 감상주의도 들어 있지 않다.
극은 일본의 조선인 이주정책에 의해 만주에 거주했던 조선인들이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기차를 타려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혼란과 빈곤과 위험이 가득한 이 상황에서 기차는 작고 타려는 사람은 많다.
당연히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전재민 구제소에 기거하는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배삼식은 이런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보여준다.
분석은 냉철하지만, 시선은 따뜻하고 표현은 풍자와 위트로 가득하다.
작곡가 최우정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브랜드코리아 창작오페라 개발 사업'을 위한 3차에 걸친 엄정한 심사에서 1위로 선정되어 '1945'의 작곡을 시작했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 '적로' 등의 여러 역작을 통해 한국 최고의 음악극 작곡가로 공인된 최우정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대본 작가와의 각별한 교감 덕분이었다.
감각적인 시어에 탄탄하게 붙은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밀도를 잃지 않았고 마치 비늘을 반짝이며 솟구쳐오르는 고기떼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작곡가 자신의 설명대로, 음악이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의 구조 자체가 극이 된 것이다.
한국어 대본에 서양 현대음악을 입혔지만 어색함이 없었고 노랫말 하나하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더는 말을 계속할 수 없는 순간에 음악이 대신 그 폭발하는 감정을 채웠다.
음악극의 본령에 도달하는 전율의 순간들이었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해 당대의 창가와 군가의 멜로디를 재가공해 삽입하고 떡 만드는 장면에서 흥겨운 국악 장단의 리듬을 사용하는가 하면 마침내 기차가 도착했을 때 쿠프랭의 음악을 인용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가 가득했다.
그 모든 음악적 장치들은 전혀 산만하지 않았다.
언어의 의미를 녹여낸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 움직였다.
글로켄슈필, 튜블러벨, 공, 탬버린 등 온갖 음색의 타악기를 활용해 영화적인 효과를 구사했고, 관악기와 하프에서도 의외의 음색을 끌어냈다.
지휘자 정치용은 대본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을 이끌며 지극히 복잡한 화성들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서정적인 패시지에서는 유연한 지휘로 깊은 감동을 안겼고, 과장 없이 담백하면서도 박진감과 생동감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공연 성공에 크게 기여한 또 한 가지 요인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캐스팅이었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13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개성 있는 연기와 뛰어난 가창으로 주인공 역할을 한다.
특히 분이 역의 소프라노 이명주는 4막에서 아찔한 고음과 피를 토하는 듯한 격렬한 가창으로 모두를 전율시켰고, 미즈코 역의 소프라노 김순영, 인호 역의 테너 이원종, 섭섭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향은도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고선웅의 연출은 드라마와 음악의 의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슬픔과 고통을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갔다.
특히 기차가 출발하는 장면에서 막이 내려와 기차를 탄 사람들과 타지 못한 분이, 미즈코를 갈라놓는 장면이 압권이다.
막에 의해 인물이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그 인물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통을 겪은 두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이기적인 집단의 선택은 관객에게 뼈아픈 울림을 주지만, 지상을 벗어난 두 여주인공의 행복한 마지막 모습은 관객을 위로하는 장치로 보인다.
사실성과 추상성을 효과적으로 혼합한 이태섭의 무대, 시대의 곤궁함을 담아낸 김지연의 의상도 강렬한 인상을 보탰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
눈물이나 웃음으로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기능이며 가치일 수도 있다.
그 감동과 재미가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깊이를 더해준다면,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분명 더 커질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세계 초연한 최우정의 '1945'는 '창작오페라'라는 용어를 '한국오페라'로 대체해가고 있는 이즈음,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충족한 신기원으로 평가할 만하다.
음악성 있는 대본을 쓰는 작가와 극을 이해하는 작곡가의 합(合)이 한국오페라 성공의 관건이라는 사실을 '1945'의 대본작가 배삼식과 작곡가 최우정은 확실하게 증명했다.
한일관계가 경색된 현재 시점에 극 중 한국인 위안부 분이와 일본인 위안부 미즈코의 우정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1945년 만주'라는 특정 시공간의 역사에서 '연민과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신파의 시대가 배경이지만 배삼식의 극에는 티끌만 한 감상주의도 들어 있지 않다.
극은 일본의 조선인 이주정책에 의해 만주에 거주했던 조선인들이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기차를 타려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혼란과 빈곤과 위험이 가득한 이 상황에서 기차는 작고 타려는 사람은 많다.
당연히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전재민 구제소에 기거하는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배삼식은 이런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보여준다.
분석은 냉철하지만, 시선은 따뜻하고 표현은 풍자와 위트로 가득하다.
작곡가 최우정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브랜드코리아 창작오페라 개발 사업'을 위한 3차에 걸친 엄정한 심사에서 1위로 선정되어 '1945'의 작곡을 시작했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 '적로' 등의 여러 역작을 통해 한국 최고의 음악극 작곡가로 공인된 최우정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히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대본 작가와의 각별한 교감 덕분이었다.
감각적인 시어에 탄탄하게 붙은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밀도를 잃지 않았고 마치 비늘을 반짝이며 솟구쳐오르는 고기떼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작곡가 자신의 설명대로, 음악이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의 구조 자체가 극이 된 것이다.
한국어 대본에 서양 현대음악을 입혔지만 어색함이 없었고 노랫말 하나하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더는 말을 계속할 수 없는 순간에 음악이 대신 그 폭발하는 감정을 채웠다.
음악극의 본령에 도달하는 전율의 순간들이었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해 당대의 창가와 군가의 멜로디를 재가공해 삽입하고 떡 만드는 장면에서 흥겨운 국악 장단의 리듬을 사용하는가 하면 마침내 기차가 도착했을 때 쿠프랭의 음악을 인용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가 가득했다.
그 모든 음악적 장치들은 전혀 산만하지 않았다.
언어의 의미를 녹여낸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 움직였다.
글로켄슈필, 튜블러벨, 공, 탬버린 등 온갖 음색의 타악기를 활용해 영화적인 효과를 구사했고, 관악기와 하프에서도 의외의 음색을 끌어냈다.
지휘자 정치용은 대본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을 이끌며 지극히 복잡한 화성들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서정적인 패시지에서는 유연한 지휘로 깊은 감동을 안겼고, 과장 없이 담백하면서도 박진감과 생동감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공연 성공에 크게 기여한 또 한 가지 요인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캐스팅이었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13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개성 있는 연기와 뛰어난 가창으로 주인공 역할을 한다.
특히 분이 역의 소프라노 이명주는 4막에서 아찔한 고음과 피를 토하는 듯한 격렬한 가창으로 모두를 전율시켰고, 미즈코 역의 소프라노 김순영, 인호 역의 테너 이원종, 섭섭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향은도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고선웅의 연출은 드라마와 음악의 의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슬픔과 고통을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갔다.
특히 기차가 출발하는 장면에서 막이 내려와 기차를 탄 사람들과 타지 못한 분이, 미즈코를 갈라놓는 장면이 압권이다.
막에 의해 인물이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그 인물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통을 겪은 두 여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이기적인 집단의 선택은 관객에게 뼈아픈 울림을 주지만, 지상을 벗어난 두 여주인공의 행복한 마지막 모습은 관객을 위로하는 장치로 보인다.
사실성과 추상성을 효과적으로 혼합한 이태섭의 무대, 시대의 곤궁함을 담아낸 김지연의 의상도 강렬한 인상을 보탰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