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예술단 작품 국내 첫 일반상영회
서양식 창법에 국악 요소 사용, 아름다운 무대효과 눈길
청춘의 사랑보다 계급갈등 부각한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양반이란 무엇이고 천민이란 무엇이기에 가슴 속에 깃든 사랑 꽃피우지 못하는가…."
여기 꽃다운 춘향이 있다.

자신을 두고 한양으로 떠나간 연인 이몽룡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슬픈 이별은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지만, 객석은 숨죽이고 춘향의 사연에 한 발짝 더 빠져들었다.

국립국악원이 26일 접하기 쉽지 않은 북한 작품을 공개했다.

북한 평양예술단이 창작한 민족가극 '춘향전' 영상자료다.

공연 실황을 촬영해 북한 '목련비데오사'가 1990년대 발행한 것으로 국내 대중에게 공개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쉽게도 해당 영상이 언제, 어느 공연장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북한 민족가극은 노래와 음악을 기본수단으로 하는 종합적인 무대예술을 말한다.

창극이나 서양 오페라식 가극과는 다른 고유한 양식으로, 서도민요를 바탕으로 사회주의적 주제를 반영했다.

이날 공개된 '춘향전'은 청춘의 사랑 자체보다는 사랑을 가로막는 계급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1988년 12월 19일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초연돼 북한 민족가극예술의 본보기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몽룡은 처음 춘향에게 고백할 때 "양반천민 가림 없을 이내 마음 믿어다오"라고 호소하다가, 이별할 때는 "양반예절 말이 많아 널 두고 가게 된다"고 애통해한다.

월매는 "양반도 사람이요 천민도 사람인데 사랑에도 귀천 있고 빈부가 있다더냐"라고 야속해 한다.

무대 뒤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방창(傍唱) 가수들은 "그들 서로 넘지 못할 높은 담장 어이하리", "빈부귀천 원수로다"라고 노래하며 주제 의식을 환기한다.

이 작품에서는 고전소설 속 월매, 방자, 향단에게서 관찰되는 가벼움과 해학, 코믹함은 찾아볼 수 없다.

핍박받는 천민 월매는 시종일관 엄숙하다.

방자와 향단은 근로계급으로서 윗사람을 정성스레 모시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유머'가 반영된 장면은 신관 사또 변학도의 기생점고 대목이다.

썩 아름답지 않은 기생이 나와 교태를 부리는 장면에선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를 제외하고는 변학도가 백성들에게 쌀을 착취하는 장면, 백성들과 갈등하는 장면을 부각해 봉건제도의 부패를 고발한다.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민족가극 '춘향전'은 양반과 상민의 계급적 대립을 바탕으로 춘향의 몽룡에 대한 절개를 그린 것이 특징"이라며 "춘향과 몽룡의 참된 사랑으로 고상한 도덕과 윤리를 교양하는 데에도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남측과 차이가 있다.

남도 판소리식 탁성 창법이 아닌 맑고 청아한 서양의 벨칸토 창법을 따른다.

또 우리 판소리 '춘향가'의 눈대목 '사랑가'가 발랄한 장조의 특성을 띠는데, 민족가극 '춘향전'에서는 비극적인 단조 아리아로 표현됐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라는 아름다운 가사임에도 어두운 단조로 표현해 춘향에게 펼쳐질 굴곡을 암시하는 듯하다.

무대 미술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20여년 전 작품임에도 입체장치로 원경의 치솟은 산세 배경을 묘사해 무대가 넓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평양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춘향전'에도 '사랑가'가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감독(신상옥)은 장조로 노래를 썼는데, 북한 감독들이 만든 건 모두 단조"라며 "북한에서 춘향전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밝음보다 봉건적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어두움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고 풀이했다.

탈북 전 북한에서 이 공연을 직접 봤다는 김철웅은 이날 해설자 역할로 관객과 함께했다.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언어로 공연되는 작품에 해설이 필요하게 된 현실을 통감한다"며 "남과 북이 '다르다'가 아니라 문화적으로는 '같다'를 피부로 느낄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춘의 사랑보다 계급갈등 부각한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청춘의 사랑보다 계급갈등 부각한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