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밖에 안 됐는데…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수사 아직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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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발생 후 두차례 집중 수사에도 범인 오리무중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만들고도 적용은 안 돼
20년 전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지면서 장기미제로 남아있는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은 첫 사건 발생을 기준으로 33년이 지났지만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는 불과 20년 전에 발생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여느 미제 사건 못지않게 국민의 공분을 샀다.
1999년 5월 20일 낮 대구시 동구 효목동 한 골목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6) 군에게 비닐봉지를 든 괴한이 다가왔다.
괴한은 순식간에 비닐봉지에 든 78% 고농도 황산을 태완군 입안으로 들이부은 뒤 다시 온몸에 끼얹었다.
이로 인해 전신 3도 중화상에 시력까지 잃은 태완군은 극심한 고통 속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49일 만에 패혈증으로 숨졌다.
경찰은 현장 탐문 수사를 시작으로 백방으로 뛰면서 범인 검거에 나섰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2005년 수사를 접어야 했다.
사건이 점점 잊혀가던 2013년 말 태완군 가족과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면서 경찰은 다시 수사팀을 꾸리게 된다.
경찰은 과거 수사기록을 토대로 태완군 부모가 용의자로 지목한 이웃 주민 A씨를 7차례 불러 조사하고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A씨의 범행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는 데 실패하고 결국 검찰도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기에 이른다.
이에 태완군 부모는 2014년 7월 4일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두고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이후 대법원에 재항고까지 했지만 이마저 기각되면서 태완군 사건은 결국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이 사건은 2015년 7월 당시 25년이던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정작 태완군은 이 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2000년 8월 1일 오전 0시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태완군의 어머니(55)는 '태완이법' 통과 당시 "범인이 자백했으면 좋겠다.
우리 태완이는 착해서 아마 용서를 했을 것이다.
범인이 '태완아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경찰은 현재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미제 전담수사팀을 꾸려 사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3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다른 미제사건과 함께 태완군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 2차례 집중 수사 당시 자료를 재검토하는 것은 물론 사건 발생지 주변에 아직 사는 주민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고 제보도 받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미제 전담수사팀 관계자는 "태완군 사건은 범인 DNA 같은 게 없어서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수사"라며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유족의 한을 풀고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만들고도 적용은 안 돼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지면서 장기미제로 남아있는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은 첫 사건 발생을 기준으로 33년이 지났지만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는 불과 20년 전에 발생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여느 미제 사건 못지않게 국민의 공분을 샀다.
1999년 5월 20일 낮 대구시 동구 효목동 한 골목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6) 군에게 비닐봉지를 든 괴한이 다가왔다.
괴한은 순식간에 비닐봉지에 든 78% 고농도 황산을 태완군 입안으로 들이부은 뒤 다시 온몸에 끼얹었다.
이로 인해 전신 3도 중화상에 시력까지 잃은 태완군은 극심한 고통 속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49일 만에 패혈증으로 숨졌다.
경찰은 현장 탐문 수사를 시작으로 백방으로 뛰면서 범인 검거에 나섰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2005년 수사를 접어야 했다.
사건이 점점 잊혀가던 2013년 말 태완군 가족과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면서 경찰은 다시 수사팀을 꾸리게 된다.
경찰은 과거 수사기록을 토대로 태완군 부모가 용의자로 지목한 이웃 주민 A씨를 7차례 불러 조사하고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A씨의 범행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는 데 실패하고 결국 검찰도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기에 이른다.
이에 태완군 부모는 2014년 7월 4일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두고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이후 대법원에 재항고까지 했지만 이마저 기각되면서 태완군 사건은 결국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이 사건은 2015년 7월 당시 25년이던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정작 태완군은 이 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2000년 8월 1일 오전 0시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태완군의 어머니(55)는 '태완이법' 통과 당시 "범인이 자백했으면 좋겠다.
우리 태완이는 착해서 아마 용서를 했을 것이다.
범인이 '태완아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경찰은 현재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미제 전담수사팀을 꾸려 사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3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다른 미제사건과 함께 태완군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 2차례 집중 수사 당시 자료를 재검토하는 것은 물론 사건 발생지 주변에 아직 사는 주민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고 제보도 받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미제 전담수사팀 관계자는 "태완군 사건은 범인 DNA 같은 게 없어서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수사"라며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유족의 한을 풀고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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