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폭력 일방적 비난하는 다른 재벌과 차별화된 행보
리카싱 지난달 게재 신문광고 "中 중앙정부 비판" 해석도
홍콩 최고 재벌 리카싱 "정부·시위대 모두 양보하고 화해해야"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14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李嘉誠) 전 CK허치슨홀딩스 회장이 시위대와 정부의 양보와 화해를 촉구했다.

지난 6월 초부터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진 후 리카싱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리카싱은 지난 8일 홍콩의 사찰 법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근 시위 사태를 "홍콩 역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제외한 최대의 위기"로 표현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리카싱은 "홍콩인은 이 난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젊은이들은 대국적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바라며, 정부도 미래의 주인공에 대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과 인정(人情)이 충돌할 수 있지만, 정치 문제에 있어 쌍방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한다면 많은 큰일이 작은 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나머지 4개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정부와 시위대 모두의 양보를 촉구하는 리카싱의 이러한 행보는 홍콩의 다른 재벌과는 다른 이례적 행보이다.

대부분의 홍콩 재벌들은 시위대의 폭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면서 홍콩의 질서 회복을 촉구하는 신문 광고를 게재하거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당국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홍콩 최고 재벌 리카싱 "정부·시위대 모두 양보하고 화해해야"
리카싱이 지난달 신문에 게재한 광고도 중국 중앙정부를 은연중에 비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카싱은 지난달 명보 등에 '폭력'(暴力)이라는 글자에 붉은색사선으로 금지 표시를 한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 윗부분에는 '최선의 의도도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最好的因 可成最壞的果)'라는 문구가 있다.

그 아랫부분의 왼쪽에는 '자유를 사랑하고, 포용을 사랑하고, 법치를 사랑한다'(愛自由, 愛包容, 愛法治)는 문구가, 오른쪽에는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다(愛中國, 愛香港, 愛自己)는 문구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과격한 양상으로 흐른 시위대의 폭력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숨은 뜻이 있다고 홍콩 언론은 지적했다.

광고의 맨 위부터 시작해서 좌우로 오가며 각 문구의 끝 글자를 모으면 '인과유국 용항치기'(因果由國, 容港治己)'라는 문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홍콩 사태의 원인과 결과는 중국에 있으니, 홍콩의 자치를 용인하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홍콩 언론의 해석이다.

리카싱이 게재한 다른 광고는 '황대지과 하감재적'(黃台之瓜 何堪再摘)라는 문구를 담았다.

'황대 아래의 오이를 어찌 계속 딸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여자로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측천무후의 핍박을 받던 아들 이현(李賢)이 임종 전 측천무후를 비판하며 지은 시의 일부다.

시위대가 폭력 행위를 계속할 경우 홍콩 자체에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을 계속 억압할 경우 민심을 잃을 것이라는 경고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 탓인지 리카싱의 광고는 중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검색이 차단됐다.

중국 광둥성 태생으로 12살 때 부모를 따라 홍콩에 온 리카싱은 1950년 청쿵공업을 세운 후 항만, 통신, 소매, 부동산, 에너지 등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해 아시아 최대 재벌 그룹 중 하나를 건설했다.

지난 2011년부터는 중국 내 자산을 줄이고, 호주와 캐나다, 영국 등에서 새로운 투자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언론에서 본토 투자를 포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비애국적 자본가'로 몰리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