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성리학의 이론이 더는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다.

기강은 허물어지고 질서는 문란했다.

[한국의 서원] ③ 실천가 사계의 정신 담긴 공간
사계(沙溪) 김장생(1548∼1631)은 기본적인 인간의 덕목을 처음부터 재정립해 예(禮)에 맞게 행동하라고 주장하며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다.

돈암서원(遯巖書院)은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우리 현실에 맞게 보급한 김장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돈암서원은 충남 논산 연산면 고성산 줄기 중간쯤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연산천이 흐르고 전면 왼쪽에 계룡산, 우측에 대둔산을 끼고 있다.

원래 서원의 위치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1.7㎞ 떨어진 하임리 숲말의 산기슭이었다.

사계는 1602년 조선 초기의 문사 최청강이 소유한 아한정(雅閑亭)이 있던 곳에 양성당(養性堂)을 짓고 30여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사계 사후 3년만인 1634년 그를 기리는 사계서원을 세웠고, 이곳은 1658년 사액을 받으며 돈암서원이 됐다.

돈암은 숲말 기슭에 있던 '돼지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자가 만년에 사용한 '돈옹'(豚翁)이란 호에서 빌려왔다는 주장도 있다.

김장생의 호인 사계는 양성당이 있던 숲말에서 비롯했다.

김장생은 '양성당기'에서 "앞에는 길게 뻗쳐 있는 숲이 있고 숲 밖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데, 하얀 모래가 맑고 아름다우며 시냇물은 배가 떠다닐 정도로 깊다"며 양성당 주변 풍광을 묘사했다.

그가 표현한 풍경이 바로 사계다.

[한국의 서원] ③ 실천가 사계의 정신 담긴 공간
◇ 웅장한 응도당과 화려한 꽃담
홍살문 뒤로 돈암서원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맞는 건물은 서원 입구 앞 중앙에 우뚝 선 산앙루(山仰樓)다.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돌기둥 위에 누각이 올라서 있다.

문루에 오르면 서원이 내려다보이고, 반대편으론 넓은 들판 뒤로 산봉우리들이 흐른다.

이 누각은 2006년 고증을 거쳐 세워졌다.

솟을삼문의 입덕문(入德門)을 통과하면 전면에 강학 공간이 자리하고 서쪽 담벼락 쪽의 응도당(凝道堂, 보물 제1569호)과 오른쪽에 있는 경회당(慶會堂)이 비스듬하게 마주 본다.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웅장한 맞배지붕 건물로, 커다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배치돼 있다.

특이한 것은 좌·우측에 눈썹지붕이 달렸다는 점이다.

지붕 아래에는 세로 기둥과 경사 기둥을 세워 지탱하고 있다.

또 정면에서 보면 기단석과 마루 사이 공간이 비어있어 마치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돈암서원 김건중 원장은 "응도당은 한국 서원 건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며 "우람한 기둥과 들보,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구조를 갖추고 있어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서원] ③ 실천가 사계의 정신 담긴 공간
서원 중앙의 강학 공간은 양성당을 중심으로 동·서재가 마주 보는 ㄷ자 형태로 건물이 배치돼 있다.

양성당은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란 뜻을 담고 있다.

마당에는 서원의 건립과 구조, 김장생의 학문을 칭송하는 돈암서원 원정비가 서 있다.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강학 공간 서쪽으로는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유생들을 가르쳤던 정회당과 김장생과 김계휘, 김집의 책판이 보관된 장판각이 위치한다.

장판각 뒤로 사당 영역인 숭례사(崇禮祠)가 있다.

이곳에는 김장생과 아들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은 화려한 꽃담이 두르고 있다.

신문 좌우의 꽃담에는 地負海涵(지부해함, 대지가 만물을 짊어지고 바다는 만천을 포용한다), 博文約禮(박문약례,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瑞日和風(서일화풍, 상서로운 햇살과 온화한 바람)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계의 사상을 축약한 글이다.

돈암서원이 숲말에서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1880년(고종 17년)이다.

낮은 지대에 들어선 돈암서원이 홍수 때 자주 침수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우, 외사, 내사만 옮겨졌고, 응도당과 비석은 현대에 이전됐다.

이런 이유로 사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는 숲말에 있을 때와 사뭇 달라져 있다.

돈암서원에서 남쪽으로 차로 5분 거리에는 사계종택과 묘소가 있다.

[한국의 서원] ③ 실천가 사계의 정신 담긴 공간
◇ 탑정호 수변생태공원과 계백장군유적지
돈암서원 남쪽에는 탑정호가 있다.

대둔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긴 탑정호는 둘레 길이 24㎞로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이곳에는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데크 탐방로를 따라가면 연잎이 가득한 풍광이 펼쳐지고, 조롱박 탐스럽게 매달린 터널을 지난다.

수변데크산책로로 접어들면 잔잔한 호수가 시원스럽게 눈 앞에 펼쳐진다.

오는 12월에는 길이 600m의 출렁다리가 들어서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곳은 특히 노을이 아름다워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수변생태공원 인근에는 계백장군유적지가 있다.

백제 5천 결사대와 신라군이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곳으로 계백장군 사당과 계백장군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전란이 끝난 후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둬 매장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백제군사박물관에서는 백제의 군사 활동, 무기 등을 엿볼 수 있다.

탑정호 서쪽에는 고려 시대 사찰인 관촉사가 자리한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찰 경내가 펼쳐지는데, 한쪽에 높이 18m의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323호)이 있다.

얼굴이 커다랗게 강조된 이 석불은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는데 1006년(고려 목종 9년) 세워졌다.

석불 앞에는 석등(보물 제232호), 연꽃 문양이 아름다운 배례석, 4층 석탑이 서 있다.

[한국의 서원] ③ 실천가 사계의 정신 담긴 공간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