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을 완전 철회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홍콩 시민이 일단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람 장관은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로 분노를 표시한 이후 “송환법은 죽었다”고 했지만 그간 공식 철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콩 시위가 진정 국면으로 갈지는 미지수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분석이다. 시민들이 요구해온 다섯 가지 중 하나만 홍콩 정부가 수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정부 발표에 불만을 표출하는 홍콩 시민도 많았다.

시민에 일단 굴복한 홍콩 정부

송환법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에도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의 한 청년이 대만에서 여자 친구를 살해한 뒤 관련 법률이 없어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자 홍콩 정부가 지난 3월 말 송환법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의 반중(反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소환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반중 인사가 홍콩 거리에서 대낮에 사라지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을 강행하자 시민들은 6월부터 대규모 시위로 맞섰다. 750만 홍콩 시민 중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 기간도 2014년 ‘우산혁명’ 때 79일을 넘어 88일에 이르자 홍콩 정부가 일단 백기를 들었다. 시위가 반중 양상으로 흐르며 학생들의 동맹휴학(罷課), 노동자들의 총파업(罷工), 상거래 중단(罷市) 등 이른바 ‘삼파 운동’으로 번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엔 중국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군이 개입해 무력 진압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전 세계가 우려를 표시하자 중국 정부는 시위가 일단 마무리되길 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3일 시위대와 대화를 제의하고 이날 홍콩 정부를 통해 송환법 폐기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명분을 쌓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시위대에 양보했는데도 시위를 계속한다면 중국군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얘기다.

시위 진정될지는 미지수

이번 조치가 시위를 잠재울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많다. 송환법 폐기는 시위대가 제시해온 다섯 가지 요구 사항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은 송환법 폐지 외에도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원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을 내걸며 요구 수준을 높여 왔다.

우산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자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해온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이날 정부 발표가 예고되자 트위터에 “람 장관의 발표는 7명이 죽고 1200여 명이 체포된 이후 나온 것”이라며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몇 주 동안 경찰의 강력해진 잔혹성은 홍콩 사회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포럼인 LHKG에서도 홍콩 정부가 나머지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 않아 시위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수 나왔다.

다만 젊은 층과 달리 중장년층과 경제계에선 홍콩 정부가 물러선 만큼 시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가고 특히 경찰과 충돌하는 폭력시위가 발생하면 중국군이 투입되는 명분만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융시장 안정될까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홍콩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홍콩 경찰의 시위대 강경 진압으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한 지난 7월 이후 주가는 크게 떨어졌고 미국 달러에 연동돼 있는 홍콩달러 가치도 출렁였다.

올 들어 회복세를 보이던 홍콩증시는 시위가 격렬해진 7월부터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일까지 홍콩 항셍지수는 6월 말 대비 10.56%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지수 하락폭(1.64%)은 물론 미국 다우지수(1.81%), 일본 닛케이225지수(3.06%), 유로 스톡스50지수(1.52%), 한국 코스피지수(7.75%) 낙폭을 크게 웃돌았다.

홍콩 경제의 안전성을 뒷받침해온 페그제도 위협받았다. 페그제는 홍콩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한 것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미국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범위에서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페그제 상단과 하단이 뚫릴 움직임을 보이면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보유한 홍콩달러를 사고파는 방법으로 페그제를 지탱한다.

6월 말까지 달러당 7.81홍콩달러 수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홍콩달러 가치는 7월 초부터 급락했다. 홍콩달러 환율은 지난 3일 달러당 7.84홍콩달러까지 치솟으며 페그제 상단에 바짝 다가섰다. 환율이 올랐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송환법 폐지 소식에 홍콩 대표 주가지수인 항셍지수는 이날 4% 가까이 급등했다. 미 달러 대비 홍콩달러 가치도 최근 크게 하락했다가 이날 소폭 회복했다. 시장에선 향후 시위가 어떤 양상을 보이느냐에 따라 증시와 환율 흐름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