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내선일체 이념 선전용 신궁 건설 계획…광복으로 미완성
한일 경제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제강점기 충남 부여에 조성되다 완성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일제 신궁 터를 활용·보존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1일 부여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말인 1939년 일본은 내선일체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고대 일본과 관련이 깊은 지역인 부여에 신도(神都) 건설 계획을 세웠다.

일제는 신도 건설 계획 핵심으로 부여 신궁이라는 이름의 신사(神社)를 짓기로 결정했다.

신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진 건물 또는 시설을 총칭한다.

5개년 사업으로 진행했으나 일제가 패망하면서 신궁은 완성되지 못했고, 현재 신궁 터에 삼충사가 들어섰다.

삼충사는 백제 충신인 성충·흥수·계백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부여 신궁은 완공되지 못했음에도 공사 중 이미 경성부(서울) 조선 신궁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신사로 알려졌다.

부소산 삼충사 입구에 있는 지하 굴은 신궁 건립과정에 형성된 시설물이다.

부여 신궁 조성과정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면서 부소산 일대는 물론 백제 왕궁지로 추정되는 부소산 남쪽 지역 등 여러 곳에 지형적인 변화가 생겼다.

부여군은 최근 부여 신궁 관련 시설물의 보존 가치를 판단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었다.

임병고 백제사적연구회 원장이 '부소산과 부여 신궁의 기억'을 주제로 기조 강연했고,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회에는 후세에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려면 신궁 시설물을 철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다만 현재 경제 보복 등으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복원보다는 현상 유지 후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주민 설문 조사에서는 신궁 터를 보존하자는 의견이 72%를 차지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주민, 문화재청, 전문가 견해를 수렴해 신궁 관련 유적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지속적인 발굴 조사, 학술대회 등으로 신도 건설 과정에서 변형된 백제 사비도성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