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33도 기록적 폭염(?)에 시달리는 영국
평균기온 22도인데…30도를 넘는 이례적 폭염 찾아와
버스 지하철 등 공공시설서 에어컨 찾기 힘들어


‘런던을 강타한 33.2도의 기록적 폭염(heatwave)’. 지난 27일 대부분의 영국 조간신문 1면을 차지한 헤드라인의 제목이다. 영국 공휴일 ‘뱅크홀리데이’였던 지난 26일 런던 히스로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33.2도를 기록했다. 기상관측 이래 8월 뱅크홀리데이 기준으로 가장 기온이 높았다. 이전 최고기록은 2001년 31.5도였다.

통상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여름에도 30도를 넘는 날씨를 경험하기 쉽지 않다. 가장 무더운 7~8월에도 30도를 넘는 날은 통상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에 불과하다. 영국 기상청(Met Office)에 따르면 런던의 8월 평균 낮 최고기온은 22도다. 지난해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도는 폭염 일수가 35일에 달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기후학자들의 분석이다. 지난달 25일 런던 히스로 지역 기온은 7월 기준으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36.9도까지 치솟았다. 지난 26일 33.2도를 기록한 뱅크홀리데이에 이어 28일까지 런던의 낮 최고기온은 연일 30도를 웃돌았다. 이렇다보니 영국 기상청은 방송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햇빛을 반드시 피하고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고 수시로 조언하고 있다.

통상 8월 말 낮 최고기온이 20도 초반대에 머무는 런던에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찾아오는 건 분명히 이례적이다. 다만 7~8월에 33도를 넘는 폭염이 수시로 찾아오는 한국과 비교하면 ‘기록적 폭염’이라고 부르기는 사실 애매한 수준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30도를 넘는 무더위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가혹한 수준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이유가 뭘까. BBC에 따르면 영국 일반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풍기 보급률도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무더위가 1년에 불과 일주일 안팎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굳이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신식 호텔을 제외하면 숙박 시설에서도 에어컨이 설치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정뿐 아니라 일반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가 밀집한 뱅크역 인근 고층빌딩에서도 에어컨이 설치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 금융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오죽했으면 직장인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자가용에서 에어컨을 켠 채 휴식을 취할 정도다. 분수대나 공원 및 호수엔 오후 늦게까지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피서를 나온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테스코와 세인스버리 등 에어컨 시설이 잘 갖춰진 대형 유통업체 매장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33도 기록적 폭염(?)에 시달리는 영국
지하철과 버스 등 공공 운송수단도 마찬가지다. 우선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2층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다. 런던 곳곳을 잇는 15개의 지하철 노선 중 에어컨 등 자동온도 조절장치가 설치된 노선은 해머스미스·시티라인, 디스트릭트 및 서클 라인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한국 지하철에 비하면 실내 쾌적감이 크게 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여름 런던 지하철의 실내 최고온도는 40도 후반대까지 치솟는 경우도 있다.

현지 언론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의 일상화가 빈부격차 문제에 따른 불만을 일깨우는 대표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폭염에 대한 계층에 따른 대처 방식 차이가 향후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갈등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