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이 직접 나서 "이슈가 돼 논의한 내용까지 부인하나"
'노조와해' 삼성 임원들 모르쇠에 재판부 "이해불가" 질타
'자회사 노조 와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임원들이 법정에서 관련 내용을 대부분 알지 못한다며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다가 재판부의 질책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27일 삼성그룹 임원 등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등 재판에서 원모 삼성카드 사장과 박모 삼성전자 부사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사건 당시 삼성전자 인사팀장이었던 원 사장과 박 부사장은 이날 검사가 제시하는 '노조 와해' 관련 문건들에 대해 대부분 "본 적이 없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노조 와해를 추진했다는 혐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당시 협력사 노조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이슈가 진행되는지 관심도 없었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부사장은 자신이 참석한 '서비스 협력사 이슈 협의회' 회의록 앞부분에 노사 문제 관련 이슈 등이 자세히 적혀있음에도 "저런 논의 하지 않았다.

왜 회의록 작성이 저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삼성전자 인사팀 인사지원그룹장으로, 노사 관련 업무의 실무를 담당했던 목모 전 전무가 문제가 되는 행위를 구체적 보고 없이 독자적으로 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박 부사장에 대한 변호인 반대 신문까지 마무리된 뒤 "이해하기 어렵다"며 직접 박 부사장을 심문했다.

재판장은 "설마 삼성전자의 최고 경영자급에서 대놓고 위법을 행하진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당시 무엇이 이슈가 돼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논의했다는 부분까지 부인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문건에 분명히 나와 있는데 다 안 했다고 하는 것인가.

노사 문제에 대해 무엇이 이슈인지 전혀 관심도 없었다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박 부사장이 "진행 상황에 대해 결과나 추이는 보고받았으나, 인사 결정이나 전략 수립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답하자 "제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또 "실제 위법 여부는 다시 따져봐야겠지만, 두 피고인의 진술을 보면 결국 다른 피고인인 목 전 전무가 최종적으로 책임질 행동을 다 한 거냐, 목 전 전무 이상(윗선)으로는 불법적인 요소가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거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이에 박 부사장이 "네"라고 대답하자 재판장은 "그렇게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끝으로 "아랫사람들이 불법을 저질러 윗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지금 재판을 보니 아랫사람을 질책하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닌 거 같다"고 지적하자, 박 부사장은 침묵을 지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