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첫 연극무대…"배우로서 '류덕환'을 없애는 게 장점"
'에쿠우스' 류덕환 "관객도 배우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연극"
"관객도 마찬가지겠지만, 배우들도 '에쿠우스'는 한 번 하면 쉽게 못 빠져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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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소재와 노출, 화려한 캐스팅으로 매번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연극 '에쿠우스'가 아홉 번째 시즌을 맞았다.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17세 소년 '알런'은 원시적 욕망과 순수로 가득 찬 인물.
앳된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의 배우 류덕환(32)은 배역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2009년과 2015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출연이다.

23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류덕환은 "20대 때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도전했는데 30대에는 어떤 알런이 될지 모르겠다"며 살풋 웃었다.

"20대 때는 확실히 알런에게만 신경 썼어요.

요즘은 연습할 때 다른 캐릭터 대사가 점차 귀에 들어와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여유가 생겼나봐요.

과거 알런과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류덕환은 '에쿠우스'를 명절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잊을 만하면 돌아오면 추석처럼, 정신없이 살다 고개를 들면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애증하는 작품이죠. 입대하고 첫 불침번을 설 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에쿠우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얼중얼 외운 적이 있어요.

그런데도 불침번이 안 끝났어요.

(웃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주문처럼 대사가 남아요.

그래서 이번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했죠."
'에쿠우스' 류덕환 "관객도 배우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연극"
숱한 연극배우들이 뮤지컬로, TV로, 영화로 넘어갔다.

류덕환은 이걸 지켜보면서도 늘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그에게 연극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TV 드라마를 찍을 때 가끔 안일해질 때가 있어요.

어려운 대사를 만나면 'NG 나면 다시 촬영하지 뭐'라는 식으로요.

그러고 나면 쉽게 포기하는 자신이 싫어서 자책해요.

이때 정신이 번쩍 뜨게 채찍질해주는 게 연극이에요.

영화나 TV, SNS는 관객이 한 꺼풀 껍질을 통해 배우를 보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날것을 보잖아요? 그만큼 박수 소리가 정말 냉철해요.

관객 반응이 미지근하다면 분명 그날 제 연기에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연극은 가감 없이 저를 검증할 시간을 주기 때문에 자꾸 찾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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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가 침체하며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대학로에 오픈런 공연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다수다.

"요즘 모두 스트레스가 많으니 고민하기를 원치 않죠. 연극계에서 웅장한 작품이 쇠락하는 게 안타까워요.

하지만 '에쿠우스'를 보시면 뭔가 이상한 기운을 받으실 거예요.

꿀꿀한 것 같기도 하고, 저 배우들 정말 힘들겠다 싶기도 할 거예요.

분명한 건, 웃고만 살 수는 없는 세상이잖아요.

이 작품으로 삶을 되돌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에쿠우스'를 꾸준히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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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우스' 류덕환 "관객도 배우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연극"
류덕환은 어느덧 데뷔 27년차. 1992년 '뽀뽀뽀'로 데뷔해 드라마 '신의 퀴즈'부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등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써 내렸다.

과거 드라마 '전원일기'의 귀염둥이 순길이 역을 맡았다고 하면 동료 배우들도 깜짝 놀란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유일하게 꾸준히 만나는 친구가 배우 문근영인데요.

근영이랑 '아역 배우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다'는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이 '억지로는 안 된다' 였어요.

20대에 애 엄마, 애 아빠 역할을 한다고 누가 공감하겠어요.

그래서 편안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전원일기' 순길이 한 번 더 하면 어떻고, 문근영이 '어린신부' 또 하면 어때요? 이제는 사람들이 저를 자연스럽게 봐주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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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환은 20대 때 옳다고 생각하는 작품에만 출연하며 대중과 접점을 넓히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은 어깨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제대 직후 영화 '국가부도의 날',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과 '미스 함무라비' 등에 쉴새 없이 출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릴 때는 거만했어요.

단 한 번도 누구를 위해 작품을 선택해본 적이 없어요.

군대에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상병 때 갓 들어온 이병이 '류 상병님, 팬입니다.

전역하고 밖에 나가서 TV에서 보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하더라고요.

그 말이 일주일이 지나도 안 잊혔어요.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모두가 편하게 볼 작품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안다.

극이 시작하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자신을 지워버린다.

인지도가 곧 재화인 시대에 약점일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가끔 유해진 선배님처럼 딱 저 사람만의 느낌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는걸요.

제가 끊임없이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란 걸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행복해요.

누군가 '인지도 굴욕'이라고 할지라도, 배우로서 제 장점은 '류덕환이 없는 것, 류덕환이 남지 않는 것'이에요.

시간이 흘러도 그 작품과 캐릭터를 오롯이 남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에쿠우스'는 9월 7일부터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료 4만∼6만원.
'에쿠우스' 류덕환 "관객도 배우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연극"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