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연극계 대부 고 이필동 선생 창단…현존하는 대구 최고 극단
한때 단원 20여명, 실력파 배우들 굳건히 자리 지켜

"연극에 대한 열정 말고는 가진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고(故) 이필동(1944∼2008)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고 싶습니다"
1977년 6월 창단해 현존하는 대구지역 극단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원각사'의 김미향(61) 대표는 15년째 극단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김 대표는 고교 시절인 1978년 국립극단이 대구시민회관에서 선보인 파우스트 공연을 보면서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화려한 무대 장치, 배우들이 선보인 혼신의 연기에 매료된 김 대표는 "저런 무대에 단 한 번이라도 설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 김 대표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이필동 선생이 창립한 극단 원각사의 단원 모집 포스터였다.

고교 졸업 직후인 1979년 입단한 김 대표는 이필동 선생과 작품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연극 사랑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지난 40년간 원각사에 몸담아왔다.

[앙코르! 향토극단] 대구 연극계의 산실 '원각사'
지난 2008년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필동 선생은 평생을 연극에 매진, 오늘날의 대구 연극계를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형으로 아성(雅聲)이란 예명을 가졌던 그는 1966년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연극 인생에 뛰어들었다.

이어 극단 '공간'을 거쳐 원각사에서 활발한 연극 활동을 펼쳤다.

지역 연극계는 그가 타계하자 대규모 추모 공연을 마련,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기도 했다.

지역 5개 극단 소속 배우 20여명이 의기투합해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추모 공연은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끝까지 무대를 지키고 공연 당일 새벽 장지에서 돌아와서도 얼굴에 분장하고 무대에 선 일화, 세트 제작비가 없어 광목천으로 무대를 만들어 공연한 것이 죄송스러워 관객들에게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린 일화 등을 담았다.

극단 원각사의 과거와 현재, 오늘날 대구 연극계를 이야기하면서 선생의 업적을 빼놓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막이 내린 후 무대와 객석의 모습은 매혹적입니다.

태풍이 지난 뒤와 같은 적막함과 지저분한 객석의 흔적, 그리고 전쟁을 치른 것 같은 폐허의 무대는 너무나 강렬해 빠져들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생전에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연극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같이 회고하곤 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한길을 걸으면서 항상 관객과 무엇을 함께 나누고 관객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또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연극 정신에 충실한 극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모든 정신을 원각사에 고스란히 담았다.

[앙코르! 향토극단] 대구 연극계의 산실 '원각사'
원각사는 1977년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로 첫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이대감 망할 대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택시드리벌', '꽃바우 할매', '박덩이 로맨스', '우체부가 된 천사' 등 98개 작품을 무대에 올려 관객과 호흡을 나눴다.

지금은 김 대표를 포함해 남아있는 단원이 7명에 불과하지만, 전성기였던 2004∼2005년에는 단원 수가 20명을 훌쩍 넘기도 했다.

박영수, 이남기, 장효진, 허세정 등 '프로 중의 프로'라는 찬사를 받는 우수하고 든든한 단원들이 원각사의 오늘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이들 외에 극단을 거쳐 간 많은 배우가 지역 연극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원각사가 대구 연극계에 남긴 업적은 수상 내역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제11회 대구연극제에서 '식구들의 세월'(강월도 작, 이필동 연출)로, 2014년 제31회 대구연극제에서 '꽃바우 할매'(박선희 작, 장종호 연출)로 각각 대상을 받았다.

'꽃바우 할매'는 2014년 열린 전국연극제(대한민국연극대상의 전신)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우체부가 된 천사'(민복기 작, 김미화 연출)로 2016년 열린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앙코르! 향토극단] 대구 연극계의 산실 '원각사'
극단 원각사는 해외 무대에도 눈을 돌려 1997년 대구지역 극단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 공연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무엇이 될꼬 하니'를 공연한 데 이어 1999년에는 인도 콜카타에서 '이 대감 망할 대감'을 선보였다.

또 2002년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꽃마차는 달려간다'는 작품을 선보여 현지 교민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첫정'이 무섭다고 연극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곳이 원각사여서 다른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서 "이필동 선생님의 무조건적인 연극 사랑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라도 원각사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