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플이 아이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기존 삼성디스플레이 외에 중국 BOE에서도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OLED 패널을 독점 공급하는 삼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다. 애플이 5세대(5G) 이동통신 등 유망 사업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삼성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용 OLED 패널 공급사에 BOE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BOE 제품을 최종 테스트하고 있으며, 올해 말께 결론이 날 전망이다. 애플은 BOE 제품이 품질 기준을 통과하면 내년 출시 예정인 아이폰부터 중국산(産) 패널 비중을 높여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공대 교수는 “BOE를 활용해 삼성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애플의 삼성 견제 움직임은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 “관세를 안 내는 삼성과 경쟁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에 추가 관세가 붙으면 아이폰 가격이 오르고 결국 삼성 스마트폰사업에 이익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해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점유율(37.6%)이 삼성전자보다 11.6%포인트 높았지만 올 상반기엔 격차가 7.5%포인트로 좁혀졌다.
'삼성 견제' 나선 애플
5G 강자 삼성 두려웠나?…애플·퀄컴 '견제구'
경쟁사들 "자칫하면 주도권 넘어가"…韓·日 경제전쟁 틈타 추격 나서


“5G(5세대) 이동통신 경쟁에서는 미국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지난 4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연설 중 일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른 나라가 미국을 앞지르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매우 과감한 조치를 하겠다”는 등의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5G 시장 상황은 미국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 정보기술(IT) 공룡들은 거의 모든 5G 관련 사업에서 삼성을 비롯한 경쟁업체에 밀리고 있다. 애플 등 미국 기업이 최근 ‘삼성 견제’에 본격 나서고, 미국 정부가 일본의 대한(對韓) 경제 보복에 뒷짐을 지고 있는 것도 ‘한국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G 사업 주도하는 삼성

22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글로벌 5G 시장 각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4월 세계 최초의 5G 스마트폰 ‘갤럭시 S10 5G’를 내놨다. 5G 통신칩 시장에선 데이터 송수신을 담당하는 모뎀칩과 연산 처리 등을 맡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결합한 ‘통합칩셋’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5G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2018년 4분기~2019년 1분기)은 37%로 화웨이(2위·28%)를 앞섰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도 5G칩용 극자외선(EUV)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가동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G를 미래 사업으로 정하고 관심을 기울이면서 각 사업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격에 나선 美 IT 공룡들

미국의 IT 공룡들은 주춤하고 있다. 통신칩 강자 퀄컴은 내년 상반기에나 5G 통합칩셋 ‘스냅드래곤’을 내놓을 계획이다. 애플은 5G 모뎀칩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5G폰 출시 시기를 내년 이후로 잡고 있다. 파운드리업체 글로벌파운드리는 아예 차세대 공정 경쟁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삼성 타깃형’ 수출 규제로 삼성이 위기에 빠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의 경쟁사들까지 나서 삼성 견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독점하고 있는 아이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공급사에 중국 BOE를 추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관세 삼성과는 경쟁이 힘들다”고 하소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나 애플 지원 의사를 밝혔다.

미국 마이크론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최근 일본 공장에 2조4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파운드리 1위 업체 대만 TSMC는 현지 언론 등에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의 고객이 TSMC로 넘어올 것”이라는 얘기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정부, 자국 기업 지원할 수도

미국과 중국 정부 등이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산업계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애플, 구글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 IT 기업들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외교 채널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한국 공정위 조사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불만을 나타냈다”며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나 법무부 반독점국이 언제든지 한국 업체를 표적으로 한 조사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수/고재연/정인설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