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족장 추서 고 문남일 선생 아들 "적대적 의도에 맞서 저지해야"
"반성도 속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선 우리 모두 한목소리 내야"

"우리는 반일도, 친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어오는 공격에 맞서지 않는다면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
지난 12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청 옆 가건물 틈에 마련된 낡은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독립투사의 아들 문해진(82) 씨는 최근 격랑에 휩싸인 한일관계에 대해 이렇게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의 행색은 전형적인 '유공자'였다.

주름진 얼굴에 비친 무거운 표정과 오래돼 가죽이 늘어난 벨트의 질감이 절대 순탄치 않았을 그의 삶을 짐작게 했다.

독립투사 아들 문해진씨 "평화지키려면 일본 불매운동 계속해야"
문 씨의 아버지 고 문남일(1914∼1980) 선생은 전남 보성에서 항일정신을 담은 신문 '농민시보(農民時報)'를 발행하고 비밀결사를 만들어 계몽운동을 이어간 독립투사다.

집에 있던 인쇄기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일본제국 타도만세' 등이 적힌 전단을 몰래 인쇄해 배포하다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하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며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며 뒤늦게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해방 후 문 선생의 가족들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독립운동가의 자부심이 아닌 가난의 굴레였다.

얼마 있던 가산은 독립운동에 모두 쓰였고, 집안의 주춧돌이던 문 선생도 고문으로 몸이 상하면서 독립을 향한 투쟁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고문으로 몸이 상해 어머니가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가 유공자라는 사실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남기셔서 알게 됐죠. 국가유공자가 뭔지도 잘 모른 채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습니다.

"
뒤늦게 독립투사로서의 아버지를 알게 됐지만 문 씨에게 남긴 의미는 컸다.

문 선생이 애족장을 추서 받은 뒤 아들 문 씨는 보훈단체 광복회에 들어가 10여 년째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도 광복절을 앞두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태극기를 나눠주는 행사를 치르고 온 참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대단한 아버지구나 싶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 나라에 목숨을 거는 게 보통 결심으론 안 되는 거라는 걸 나 자신도 아버지가 되고 나서 더 깊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힘닿는 주변에라도 아버지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독립투사 아들 문해진씨 "평화지키려면 일본 불매운동 계속해야"
이런 문 씨에게 최근 경색된 한일관계가 주는 의미는 다소 무거웠다.

그는 한일 경제갈등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우려하며, 국내뿐 아닌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항일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들어온 공격을 막지 않으면 힘의 균형이 깨져, 되레 평화가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희 독립유공자들이 항일집단은 아닙니다.

물론 친일집단도 아니죠. 누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단지 적대적 의도에 맞서 그것을 저지시키지 않는다면 평화는 또다시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
불매운동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진 시민들에겐 역사관을 돌이켜볼 것을 당부했다.

문 씨는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그건 상대방이 그럴 의도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며 "반성도 속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필요한 건 갈등이 아니라 우리끼리 뭉쳐서 내는 하나 된 목소리하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