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큘레이터(공기순환기)가 여름철 대표 가전으로 자리잡았다. 생활가전업계는 올해 국내 서큘레이터 판매량이 1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기세라면 이르면 내년께 서큘레이터가 레드오션이 된 선풍기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엔 ‘있으면 좋은’ 보조기기에 그쳤으나 얼마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필수 가전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국내 서큘레이터 시장은 기존 에어컨업계를 장악한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신일산업 ‘DC모터 에어서큘레이터’
신일산업 ‘DC모터 에어서큘레이터’
멀리 가는 고속 회오리바람

서큘레이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폭염이 본격화된 2017년 여름부터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연간 성장세는 30~40%다. 서큘레이터 판매량은 2000년대 초반 5만 대도 안 됐지만 지난해 50만 대로 10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관련 업계는 서큘레이터가 선풍기 판매량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선풍기 예상 판매량은 150만 대로 몇 년째 정체 상태다.

제트항공기처럼 공기를 회오리바람으로 만들어서 멀리 쏘는 원리다. 흡입(빨아들임)과 압축(모음), 연소(길게 뽑음), 배출(멀리 보냄)의 과정을 거친다. 선풍기는 짧고 넓은 바람을 내보내 5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만 시원하다. 이에 비해 서큘레이터는 빠른 속도로 직진하는 회오리 바람을 20m 이상 내보낸다. 바람 도달 거리가 선풍기의 네 배다. 날개의 두께와 강도, 날개 사이 간격 등이 선풍기보다 훨씬 크다.

에어컨과 함께 사용하면 실내 온도를 낮추고 쾌적한 공기를 멀리 보내 냉방 효율을 높이고 전기료도 절감된다. 거실에 에어컨을 놓은 가정에서 서큘레이터를 함께 쓰면 온 집안이 시원해진다. 공기순환 기능 덕분에 실내 공기를 환기할 수 있고 빨래 건조에도 쓰여 계절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하다. 디자인도 선풍기보다 세련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선호도가 높다. 가격은 선풍기의 두 배 정도다. 고령층에선 아직 서큘레이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비싼 선풍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폭염 타고 '100만대 시장' 올라선 서큘레이터
중견·중소기업의 각축장

올해는 미세한 풍속 조절 등 기능이 강화되고 목 길이가 긴 스탠드 제품이 인기다. 프리미엄형과 보급형 등 가격대도 다양해졌다. 주 사용자가 소파나 의자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 1위인 신일산업을 비롯해 SK매직, 보국전자, 파세코, 보네이도 등이 제조하며 제품 종류만 50여 가지다.

신일산업은 올해 자사 서큘레이터 판매량이 45만 대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자 선풍기에서 서큘레이터로 대표 제품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2019년형 DC 모터 에어서큘레이터’는 기존 제품에서 썼던 교류(AC)모터 대신 직류(DC)모터를 장착했고 풍량을 12단계로 세분화했다. DC모터는 AC모터보다 비싸지만 바람 세기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고 소음이 적다.

렌털업체인 SK매직도 가세했다. SK매직의 서큘레이터는 스탠드형과 탁상형 두 가지다.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저소음 수면풍 모드가 있어 잘 때도 켜 놓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여름가전에 공을 들이고 있는 파세코는 올해 ‘BLDC 서큘레이터’를 출시했다. 리모컨 분실을 막기 위해 제품 앞면에 자석처럼 부착했다. 국내 최초로 상하좌우 자동 회전이 가능한 서큘레이터를 선보였던 보국전자는 올해 신제품을 10여 종 내놨다. 보네이도의 서큘레이터는 기존 모델보다 소비 전력을 최대 80% 낮춰 진동과 발열을 줄였다.

■서큘레이터

공기순환기. 바람을 회오리치게 만들어 공기를 최대 20m 멀리 이동시킨다. 에어컨과 함께 사용하면 냉방효과를 높인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