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집 '책임에 대하여' 펴낸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다카하시 "국가 간 조약으로 개인 피해 말소된다는 주장은 문제"
"일본 과거사 청산 없으면 한일관계 회복 어려워"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 우파 세력이 강해졌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들의 역사 인식이 지금의 한일 관계 악화를 낳고 있습니다.

"(다카하시 데쓰야)
"2차 대전에서 패하고 나서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그때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지배층에 남은 게 일본입니다.

일본이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고 극복하지 않는 한 갈등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서경식)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한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회복되려면 일본의 과거 청산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 정치권과 국민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본성이 경제보복 조치 등의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서경식(68)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63)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는 12일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파국을 맞은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재일 조선인 2세인 서 교수와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다카하시 교수는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우경화하는 일본을 비판하는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를 펴냈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며 패전 이전의 망상으로 회귀하려는 일본을 비판해왔다.

서 교수는 간담회에서 "다카하시 교수와 1990년대 중반에 만났는데 25년이 더 지나서도 이런 대담을 또 한다는 것이 놀랍다"며 "그만큼 일본 사회가 계속해서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일본이 위안부나 징용 피해자 같은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 실패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일본에는 식민지 책임이 있으며 그 청산이 숙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무책임이 한일관계 악화 등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아베 정권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 결정을 내린 것은 한국의 징용 배상 관련 대법원 판결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정권이 그와 같은 판결이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미디어가 아베 정권 주요 인물들의 견해를 비판 없이 전달하면서 국민들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국가 간 조약으로 인해 개인 피해가 말소된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한일 조약뿐 아니라 국제인권법상으로 봐도 개인의 권리가 존중돼야 한다는 게 세계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카하시 교수는 "아베 정권은 1965년으로 후퇴한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지만, 아베 정권은 그 이상은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가장 과거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나라가 일본"이라며 당분간 한일 관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고 극복하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며 "과거처럼 한일 관계를 회복하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국민들의 과거 청산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본 스스로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일본 국민들이 과거 식민지 지배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문제점, 위안부를 비롯한 피해자 보상 등에 대해 깊이 알고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서 교수는 강조했다.

또한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 간 화해와 합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 전 세계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진단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도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인 성찰과 극복이 새로운 과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일본은 국민 다수의 식민주의적 본성이 큰 문제"라며 "권력이 억압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과거 나라가 저지른 범죄를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고 무의식적으로 식민주의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서경식 교수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마르코폴로상, 후광학술상 등을 받았다.

1956년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나 도쿄대를 졸업한 다카하시 교수는 일본 사회에서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철학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