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FRS '전문가 위원회' 설치 검토해야
지난해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적발돼 제재를 받은 기업과 이를 감사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징계를 받은 회계사들의 수가 약 70~80% 늘었다는 통계를 접했다. 감사보고서가 수정되는 경우도 60%나 증가했다. 회계 위반 징계와 재무제표 수정의 대부분은 사소한 오류 때문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부에서는 그 원인으로 국제회계기준(IFRS)을 지목한다. IFRS는 ‘원칙 중심 회계기준’이다. IFRS 도입 이전 사용하던 ‘규정 중심 회계기준’과 다르다. 미국, 일본은 여전히 ‘규정 중심 회계기준’을 사용한다.

IFRS는 의사결정의 준거점이 되는 틀만 제공하는 회계기준이다. 전문가가 그 틀에 따라 적정한 회계처리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어서 IFRS상에서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판단이 다르다면 회계처리 결과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감독당국은 IFRS가 도입된 이후에도 정답은 하나뿐이라는 규정 중심 회계기준이 사용될 때의 입장을 고수해왔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모호한 사항에 대해서도 당국의 해석이 옳다면서 기업과 회계사를 처벌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회계법인들이 처벌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보수적으로 회계처리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특히 외부 감사인(회계법인) 교체 직후 새로운 감사인이 나서서 전임 감사인이 수행한 일을 부정하고 과거 회계처리를 소급해 변경하면서 기업 재무제표는 잇따라 수정됐다. 재무제표가 수정되면 과거의 회계처리는 자동으로 분식회계로 분류된다. 회계처리 위반 적발 건수, 처벌받는 기업과 회계사들의 수가 크게 증가한 배경이다.

이런 갈등이 발생할 경우 기업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새 감사인의 의견에 기업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감사의견 거절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새 감사인의 의견에 맞춰 과거 재무제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新)외부감사법에 따라 내년 시행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감사인 교체를 빈번히 발생시킬 것이다. 신임 감사인이 조금이라도 모호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과거 재무제표를 수정한다면 자본시장은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해법으로 ‘전문가 풀’을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관련 집단 간 견해가 다를 경우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조세심판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회계심판원 제도를 만들자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온다.

이제 와서 IFRS를 폐지하고 새로운 회계기준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국가가 쓰는 회계기준을 갑자기 변경하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국가 신뢰 하락뿐 아니라 한국 기업에 대한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다. IFRS를 사용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다른 회계기준의 채택을 고민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원회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처벌 위주의 감독을 사전적 지도 위주로 개편하겠다는 내용의 ‘회계감독 선진화 방안’을 지난 6월 발표했다. 기업과 회계사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언자 역할을 하겠다는 감독당국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