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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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기존 영화들이 시대의 아픔이나 상처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이 영화는 승리의 역사를 다뤘어요. 그런 점에서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특정 인물이 아니라 숫자로밖에 기억될 수 없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해 대승을 거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류준열은 “‘나라를 뺏긴다’는 말이 어색해진 시대가 됐지만, 겨우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역사”라며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나라를 가지고 산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고 대본을 처음 읽은 순간을 떠올렸다.

그동안 류준열은 현대사 속 다양한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다.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의식 있는 대학생으로, 88올림픽이 열린 ‘쌍팔년도’ 쌍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무뚝뚝한 순정남으로 분했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트래블러’로는 현 시대를 사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봉오동 전투’를 통해서는 99년 전, 독립의 투지가 굳건하던 청년 이장하가 됐다.

“영화에서 장하는 총을 쏘면서 처음 등장해요. 그 장면에서 대본에는 ‘청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돼 있었는데 ‘청명하다’는 말이 와닿았어요. 그게 이장하를 표현하는 데 참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했거든요. 맑고 밝다는 뜻…. 장하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독립군의 눈빛이 청명했을 거예요. 정식 군인이 아닐지라도, 차림이 남루했을지라도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눈에 가득했을 겁니다.”
류준열이 연기한 이장하는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맑고 여리다. 주요 인물 가운데 이장하만 유일하게 정식 훈련을 받은 군인인 데다 분대장이라는 직책도 맡고 있다. 류준열은 쉽게 속내를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임무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장하를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만약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면,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라면도 먹고 호두과자도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가는 길에 한 끼도 못 얻어먹은 격입니다. 하하. 장하는 앞만 보고 부산까지 가는 스타일인 거죠.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도 억눌러야 했기 때문에 연기하기에 답답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장하는 이런 모습으로 끝까지 가야 한다’는 감독님의 말에 제가 설득당했죠.”

이장하는 먼 거리에서도 일본군만 정확히 겨누는 명사수다. 이 때문에 류준열은 영화 촬영 전은 물론 촬영을 시작한 뒤에도 사격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실탄으로도 연습하며 감각을 익혔다. 일본군을 유인하려고 빠른 발을 이용해 협곡을 자유자재로 타는 이장하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와이어 액션에도 처음으로 도전했다. 류준열은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서 무서웠다”며 엄살을 떨었다. 혹시나 부상으로 촬영이 연기될까봐 압박붕대로 발목을 꽁꽁 묶고 6개월간 산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류준열은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국찢남’(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별명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제가 하고 싶은 연기가 그 말에 있는 것 같다”며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류준열은 이제 데뷔 5년차인데도 10년차는 훌쩍 넘은 것 같은 연기력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남다른 것 같다고 칭찬하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다음에는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인가를 보는데, 그중에서도 시대가 원하는 얘기에 관심이 생겨요. 배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얼굴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