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이 퇴직연금시장에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올 상반기 9000억원 이상을 끌어모으며 주요 금융회사 중 증가폭 1위를 기록했다. 퇴직연금시장 1, 2위인 삼성생명(1043억원)과 신한금융(8674억원)을 앞질렀다. 퇴직연금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90兆 퇴직연금' 유치戰…KEB하나銀, 성장 1위
성장률 두드러진 KEB하나銀

KEB하나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13조5168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8872억원(7.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농협은행(5.7%) 국민은행(5.4%) 기업은행(4.2%) 신한은행(3.8%)을 모두 앞섰다. KEB하나은행이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율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EB하나은행, 하나금융투자, 하나생명 등을 포함한 하나금융그룹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도 껑충 뛰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12월 말 금융권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6위(13조21억원)에서 올 6월 말 9082억원 늘어난 13조9103억원으로 5위에 올랐다. KEB하나은행을 주축으로 퇴직연금 사업을 본격 강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2월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연금사업본부를 신설했다. 6월에는 연금사업본부를 연금사업단으로 격상했다. 퇴직연금을 중심으로 한 연금·은퇴설계 사업부문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5월엔 퇴직연금 관련 상담에 특화한 ‘연금손님자산관리센터’를 열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전문은행으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6월엔 퇴직연금 수수료도 내렸다.

신한·KB 2위 경쟁 치열

다른 금융사도 퇴직연금 사업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 상반기엔 퇴직연금 적립금 1위인 삼성생명(24조7183억원)에 이은 2위 경쟁이 여느 때보다 치열했다. 2위 신한금융(22조8615억원)과 3위 KB금융(22조2539억원)의 격차는 지난해 12월 말 2조205억원에서 올 6월 말 6076억원까지 줄었다. KB금융이 연초부터 공격적인 영업으로 신한금융을 긴장시켰다는 후문이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은 퇴직연금 사업 강화 전략을 앞다퉈 내놨다. 신한금융은 6월부터 자회사별로 흩어져 있던 퇴직연금 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퇴직연금 사업부문제’를 도입했다. 지난달부터는 손실이 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침을 내놨다. KB금융도 5월 퇴직연금 사업의 컨트롤타워로 연금본부와 연금기획부를 신설했다. 국민은행은 기존 연금사업부를 연금사업본부로 격상하고, KB증권과 KB손해보험도 각각 연금사업부를 꾸려 전문성을 높였다.

우리금융과 농협금융 역시 퇴직연금 사업 강화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수익률 관리를 위한 ‘퇴직연금 자산관리센터’를 새로 열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수수료를 인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령화에 저금리 저성장 기조까지 장기화하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노후보장 수단으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2017년(168조4000억원)보다 12.8% 증가했다. 2023년엔 퇴직연금시장이 312조원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