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맞대응 속 촉발될 '승자 없는 싸움' 가능성 경고
美 관여·'피해자 동의' 전제로 한 해결방안 나올지 주목
"악순환 원치않아" 대화 여지 둔 文대통령…외교로 출구 찾을까
일본 정부가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한 대응 태세를 밝히는 동시에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문 대통령은 2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주재한 긴급 국무회의에서 '대단히 무모한 결정', '깊은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일본의 결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현 상황을) 멈출 길은 오직 하나, 일본 정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해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한일 양국이 생산적 결과물 도출 없이 소모적 공방에 치중하다가 서로 공멸의 길에 들어설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외교적 해결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양국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한국 정부의 대응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수출규제 문제 해법 모색 차 지난달 31일 일본을 방문한 국회 방일 의원단은 일한의원연맹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이런 위기의식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방일 의원단장인 무소속 서청원 의원은 오찬 후 기자들과 만나 "한가지 분명히 공통으로 나눈 인식은 '현안이 엄중한 가운데 계속 (이렇게) 나가면 양국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주요 외신도 일본의 결정을 긴급히 타전하며 미중 무역마찰로 세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첨단 산업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에 즉각적인 대응을 취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승자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대화를 비롯한 외교적 해결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미국이 한일 양국에 일종의 중재안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일본에 대화를 압박하고자 하는 뜻으로 읽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1일 "미국이 일본에는 수출규제 강화 '제2탄'을 진행하지 않을 것, 한국에는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해) 압류한 일본기업의 자산을 매각하지 않을 것을 각각 촉구했다"고 보도했으나, 청와대는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일본은) 일정한 시한을 정해 현재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협상할 시간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미국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까지 무시하고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강행한 일본의 책임을 부각하는 한편, 미국의 관여를 통한 외교적 해결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방콕에서 태국의 돈 쁘라뭇위나이 외교부 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일 양국이 갈등을 완화하는 길을 찾기를 희망한다"며 한일 갈등 악화를 경계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미국을 통한 대화는 물론 물밑 접촉 등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우리 정부가 제안한 '1+1' 안을 일본이 거절한 상황에서도 '피해자 동의'라는 대원칙하에 어떤 안이든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1+1'안에 대해 일본은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일본의 안을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