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개월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현 상황을 장기간 저물가가 지속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라고 진단했다.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극심한 소비 부진 등이 나타나면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들어설 수 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디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최장

통계청이 1일 발표한 ‘2019년 7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56으로 전년 동월 대비 0.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전월 대비로는 0.3%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0.8%를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1%를 밑돌고 있다. 2015년 2~11월(10개월) 후 최장 기록이다. 2015년은 그해 5월 터진 ‘메르스 사태’로 내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됐던 시기다.

올해 1~7월 누계 물가 상승률 역시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했다. 2015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저물가가 지속되는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며 “총체적 수요 감소에 따라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라기보다 유류세 인하 등 정책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디플레이션 진입하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디스인플레이션에서 한 단계 나아가 디플레이션 진입을 앞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장기 불황으로 해석하려면 물가 상승률이 적어도 1년 정도는 마이너스를 기록해야 한다”며 “지금 추이만 갖고 디플레이션 국면이라고 판단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됐는데 그 정도는 돼야 디플레이션”이라며 “경제지표가 대부분 좋지 않지만 물가는 탄탄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은 “디플레이션이 된 건 아니지만 지난 반년 동안 계속 디플레이션 상태에 근접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저물가 원인이 물가 관리 정책 덕분이라고 하지만 수요 부족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가 물가에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률이 이렇게 오래 0%대를 유지한다는 건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와 다름없다”며 “소비자들이 필수재를 제외하면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 저물가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디플레이션 기조와 결합해 실물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디스인플레이션

disinflation.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조정 정책이다. 다만 최근에는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하락’을 뜻한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