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환승구역 내 신고 없이 금괴 반출 인정…관세법 위반 첫 사례 홍콩산 금괴 4만개를 국내 공항 환승 구역에서 여행객 몸에 숨겨 일본으로 빼돌린 뒤 400억원대 시세차익을 남긴 금괴 밀수 일당이 항소심에서도 역대 최대 벌금을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형사2부(신동헌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관세·조세), 관세법·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밀수조직 총책 윤모(53) 씨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운반조직 총책 양모(46) 씨에게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또 윤 씨와 양 씨의 1심 벌금 1조3천338억원과 1조3천247억원 절반가량인 벌금 6천669억원과 6천623억원을 각각 선고했다.
윤 씨와 양 씨에게 선고된 추징금 2조102억원은 1심과 같았다.
공범 6명에게는 1심보다 감형된 징역 1년 6개월∼2년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496억∼5천914억원, 추징금 1천15억∼1조7천951억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 중 3명이 받은 334억∼1천345억원 벌금은 유예됐다.
특히 윤 씨와 양 씨가 받은 벌금액 6천600억여원은 역대 최대다.
2조원이 넘는 윤 씨, 양 씨 추징금은 분식회계 혐의로 추징금 23조원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항소심 쟁점은 공항 환승 구역에서 금괴를 빼돌린 행위가 관세법상 반송 신고 규정을 어겼는지, 금괴 판매로 얻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포탈할 의도가 있었는지 등이었다.
관세법은 외국으로부터 국내에 도착한 물품이 수입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시 외국으로 반출되면 반송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금괴가 반송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환승 구역에서 여행자가 소지한 금괴는 반송신고대상으로 봐야 한다"며 "이를 떠나 애초 반송신고 대상인지 관심이 없었고 반송신고 할 마음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금괴 밀반송 행위가 발각되지 않고 동시에 범행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을 심산으로 조세포탈을 한 것이 인정된다"며 조세를 포탈할 의도가 없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금괴 밀반송 범행은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저질러져 동기가 매우 불량하고 가족 여행객을 유인해 운반책으로 끌어들여 급기야 일본에서 밀수범으로 구속되는 등 사회적 폐해가 컸다"며 "밀반출한 금괴가 4만개에 이르고 포탈한 조세도 최대 45억원에 이르러 죄책이 무겁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 재산이 대부분 추징될 것으로 보이는 점, 막대한 벌금을 내지 못해 징역형 외에 1천일 이상 노역장에 유치될 것으로 보이는 점, 일부 피고인은 포탈 세금 상당액을 낸 점, 범행 가담 정도에 따라 형량을 정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신고하지 않고 수출하거나 반송한 물품 원가가 5억원을 넘을 경우 원가를 기준으로 벌금을 책정하고, 밀수한 물품을 몰수할 수 없을 때는 국내도매가격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윤 씨 등은 1심에서 최대 2조원이 넘는 추징금과 1조3천억원 벌금을 받았으나 재판부는 벌금액을 절반으로 작량 감경했다.
그런데도 천문학적인 벌금을 사실상 납부하기 어려워 벌금 선고유예를 받은 3명을 제외한 5명은 1천일간 최대 일당 6억6천만원짜리 '황제 노역'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검찰은 2조원이 넘는 추징금에 대해서는 전부 받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이 숨겨놓은 범죄수익을 최대한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윤씨 등은 2015년 7월 2016년 12월까지 홍콩에서 산 금괴를 가지고 항공기로 국내 공항에 도착한 뒤 환승 구역에서 사전에 교육한 한국인 여행객에게 전달해 일본 공항을 통해 반출한 혐의로 지난해 5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빼돌린 금괴는 4만321개, 시가로 2조원이며 시세차익만 400억여원이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세금이 없는 홍콩 금괴를 한국을 거쳐 일본 등지로 빼돌리는 조직적인 중계 밀수 범행을 관세법으로 처벌한 첫 사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