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 대응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락을 명목으로 당초보다 더욱 공격적인 확장 재정 방침을 밝혔다. 한국은행이 이달 들어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정책 조합 측면에서도 한발 더 나아간 확장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내년도 예산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500조원을 훌쩍 넘게 편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원욱 수석부대표, 문 대통령, 이인영 원내대표, 서삼석 부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원욱 수석부대표, 문 대통령, 이인영 원내대표, 서삼석 부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 대통령, 국제기구 인용해 확장 재정 주문

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나 일본 수출 규제 대응만큼은 (정치권이) 힘을 모아주면 좋겠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이렇게 좋은데 왜 재정을 더 투입하지 않느냐’며 문제 제기를 한다”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간담회가 끝난 후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확대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확장 재정 방침을 강조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과 일본의 경제 침략 등 대외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지난 18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며 “통화당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경의 조속한 처리 및 집행과 함께 내년 예산을 보다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확장 재정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은 “한은 금리 인하에 적정한 정책 조합 측면에서 확장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며 “내년 예산안도 더 확장적으로 편성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정은 이번주 내로 확대재정관리 점검회의를 열어 상반기 재정집행 점검 및 일본의 경제 침략 등과 관련한 하반기 재정 운용,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올해 대비 50조원 예산 증가할 수도

여권은 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작업에 착수한 지난달부터 확장 재정을 압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각 정부 부처가 요구한 내년도 예산·기금 총 지출을 취합한 결과 올해 예산(469조6000억원)보다 6.2% 늘어난 498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조 의장은 같은 달 원내대책회의에서 “미·중 무역분쟁과 중국 경기 둔화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내년 예산은 최소 올해 예산 증가율 9.5%를 감안한 수준에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증가율 9.5%를 내년 예산안 편성에 반영하면 전체 예산안 규모는 44조6000억원 늘어난 514조2000억원이 된다. 증가율이 두 자릿수가 되면 증액 규모는 50조원을 넘길 수도 있다.

당·청은 국가채무비율도 2.3%포인트 낮아진 만큼 재정 추가 투입 여력이 더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지난달 국민 계정 통계 기준 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면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8.2%에서 35.9%로 줄었다.

커지는 압박에 부담스러운 기재부

기재부는 점차 커지고 있는 여권의 확장 재정 압박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 들어 유독 여당의 공식 메시지를 통한 압박이 세졌다”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여당이 공개적인 여론 조성을 통해 기재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퍼주기 재정으로 표심을 사려 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향후 재정위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