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18일(현지시간) 이란의 무인정찰기를 격추한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이란은 자국 원유를 밀수하던 외국 유조선을 억류한 사실을 밝혔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민간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연합체 결성에 속도를 내자 이란은 “지옥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 해군 강습상륙함인 USS복서함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무인정찰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인정찰기가 복서함에 1000야드(약 914m) 정도 거리까지 접근해 여러 차례 퇴각 신호를 보냈지만 이를 무시했다”며 “이번 조치는 방어적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복서함은 공해상에 있었으며 드론이 복서함을 위협할 만한 범위에 들어와 방어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지난달 20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의 무인정찰기를 격추한 한 달 만에 이뤄졌다. 당시 이란은 미군 무인정찰기가 이란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추락한 이란의 무인정찰기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위터에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무인정찰기를 잃지 않았다”며 “미 군함이 미군 무인기를 실수로 떨어뜨린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적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날 외국 유조선 한 척과 선원 12명을 지난 1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억류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유조선은 이란 밀수업자로부터 원유를 대량 구매해 해외로 빼돌리려던 중이었다고 이란 측은 주장했다. 이날 이란 국영방송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선박은 파나마 국적 유조선인 리아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선박은 13일 밤 이란 영해 인근에서 행방불명됐다.

미국이 올 5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제재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까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는 총 여섯 척의 민간 유조선이 피격당했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민간선박 보호를 위한 연합체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세계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자국 선박을 보호하는 일에 함께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19일 워싱턴 주재 각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 안전 도모를 위한 해양안보계획 합동브리핑’을 열 계획이다. 이미 몇몇 국가는 미국 측에 이 계획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호위연합체 구성 움직임에 이란은 강하게 반발했다. 알리 파다비 이란 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은 이날 “미국은 페르시아만에 들어올 때마다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은 나머지 지옥에 온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