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양심' 판단 기준 모호해 혼란 지속
총싸움 게임 기준 안 돼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영표 대전지방법원 형사3단독 판사는 폭력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을 즐긴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병역거부자 A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인 A씨는 종교적 양심에 따른 입영 거부라고 맞섰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 판사는 A씨가 2015년 현역 입영 대상자로 확정된 뒤인 2016년에야 여호와의증인 침례를 받은 점 등도 고려해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실형 선고를 각오하고 병역거부에 이른 점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이를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전쟁 관련 게임을 즐긴 것과 양심적 병역거부는 별개”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상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도 총싸움 게임을 한 적이 있지만 재판부는 그가 15세부터 오랜 기간 여호와의증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진정성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에도 서울남부지법은 전쟁 게임을 했던 한 병역거부자에게 “사소한 일탈 행위만으로 그의 양심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같은 사안을 놓고도 판사의 주관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그나마 양심을 변별할 구체적 기준으로 여겨진 ‘총싸움 게임 접속 여부’의 효력이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며 “A씨와 B씨의 차이점은 얼마나 오래 여호와의증인 생활을 했느냐 정도로 보이는데, 신앙생활 기간이 짧다고 양심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판례 쌓일 때까지 혼란 계속”
이 같은 혼란은 이미 예고됐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 진정한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기준을 내놨다. 사실상 판사 재량에 맡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급심 판결이 축적되고 대법원에 관련 사건 상고심이 올라와 ‘교통정리’가 될 때까지는 판사 가치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도 “일률적인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며 “3심 제도라는 사법부 시스템에서 하나씩 극복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심’의 정의를 둘러싼 혼란은 지속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2만5664명에 달하던 입대 거부 등 병역사범은 지난해 8314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