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환경 변화에 대비해 기업들이 통상 담당 조직의 역할을 ‘이슈 대응’에서 ‘전략·기획’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한국무역협회가 제안했다. 정부에는 외국인투자 심의 기구 등 국내 산업 경쟁력을 지원하는 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무협은 이런 내용을 담은 ‘통상전략 2020’ 보고서를 17일 발간했다. 김영주 무협 회장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은 중국의 경제 특성을 미국이 계속 문제삼아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를 상수(常數)로 두고 통상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자유무역 요구가 지속되더라도 중국은 공산당 주도로 국가경제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중국주식회사’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미국은 앞으로 중국이 제3국으로 우회하거나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흐름을 차단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따라서 미국이 한국을 중국의 우회 수출지로 인식하는 부정적 시각을 바꾸기 위해 정부에 대한 로비 뿐 아니라 민간 싱크탱크 등에 대한 전방위 접촉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무협은 또 기업들이 스스로 통상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인건비나 기술력 등에 기반해 국가별 분업이 이뤄지는 글로벌 밸류체인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덤핑 관세 등에 대한 수동적 대응 위주였던 통상 업무를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 영역에서 담당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협은 통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로 △외국인투자 심의 제도 도입 △불공정 무역에 대응할 무역구제제도 기능 강화 △디지털 국제 통상규범 대응을 위한 민관 디지털 무역 협의체 구성 등을 제안했다.

현재는 외국인투자 승인을 지자체가 전담하고 있다. 중앙 정부는 외국인이 투자에 상응해 요구하는 세제 혜택 등을 심사하는 역할만 해 왔다. 김 회장은 “지자체 차원에서는 투자의 영향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최근 국제 추세에 맞춰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 같은 제도 도입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했다.

무협은 특히 철강산업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가 지속될 경우 중국산 제품과 투자가 한국으로 몰려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지로 인식되는 것은 물론 사안에 따라 국내 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국 칭산강철그룹이 국내 기업과 공동투자로 스테인리스 냉연 제조공장을 설립하겠다는 투자의향서를 부산시에 제출한 이후 국내 철강업계 등은 이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편 김 회장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정치·외교 문제로 두 나라의 협력이 끊기면 양국 모두 제조업 역량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되면 한국 정부는 대체품 개발을 위해 수도권 규제와 환경 규제 등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일본 정부는 추가 보복 수단으로 전략 물자 수출 우대제도(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하고 오는 24일까지 업계 의견을 받고 있다. 무협은 다음주 초까지 의견서를 낼 계획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