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와 약값의 대부분을 보장해주는 실손의료보험은 3400만 명 넘게 가입해 ‘국민 보험’으로 꼽힌다. 하지만 청구 과정이 번거로워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데도 신청하지 않은 국민이 47.5%에 이른다(보건복지부·금융위원회 설문조사). 전산망을 활용해 보험금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추진하자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온 이유다. 그동안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시각차가 큰 데다 법 개정도 지지부진해 수년째 헛바퀴만 돌았다. 이런 가운데 석 달여 만에 다시 열린 국회가 법안 심사 일정에 들어감에 따라 이번엔 법제화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류 산더미'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 간소화되나
병원에서 서류 챙길 필요 없어질까

9일 국회에 따르면 금융법안을 다루는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는 오는 16~17일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연다. 이 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다룬 ‘보험업법 개정안’ 두 건이 논의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개정안은 고용진·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것으로,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쉽게 탈 수 있도록 병원이 환자의 진료내역 등을 직접 보험사에 보내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금은 환자가 진료명세서 등 종이서류를 병원에서 받아 보험사에 내야 한다. 보험사들은 서류를 접수해 일일이 입력하는 등 부담이 적지 않다.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면 보험사들은 ‘낙전 수입’이 줄어 당장은 손해지만 업무 효율화에 따른 이득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진료기록 전산화로 과잉진료와 보험사기를 걸러내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가장 큰 난관은 의료계의 반발이었다. 몇몇 보험사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나섰지만 일부 대형 병원과 개별 제휴를 맺는 수준에 그쳤다. 법안 논의에 탄력이 붙자 의료계는 지난 3월 잇따라 반대 성명을 냈다. 청구 간소화가 개인의 의료선택권을 제한하고 재산권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보험사 이권사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 반발의 이면에는 보험금 청구가 전산화되면 값비싼 비급여 진료 현황이 노출되고, 정부나 보험사가 진료수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소비자 편익 위해 반드시 필요”

정부와 국회는 청구 간소화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금융위와 복지부를 중심으로 의료계, 보험업계, 시민사회계 등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의료계가 회의에 계속 불참하자 정부와 국회도 강하게 나서지 못했다. 금융위는 2015년에도 청구 간소화를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에는 일부 보험사의 반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젠 ‘소비자 편익’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청구 간소화를 적극 수용하기로 입장 정리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 편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종이로 청구서류를 제출하면 개인정보가 보호되고, 전산으로 제출하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보험업계는 청구 간소화가 4~5년 넘는 논의를 거친 해묵은 문제인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되길 바라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총선 모드’로 넘어가면 20대 국회 처리는 물 건너가고 최소 2~3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