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영권 승계 상속세 기준은 달라야
높은 상속세 때문에 국적을 포기하고 나라를 떠나는 부자가 많다는 말이 떠돈다. 캐나다, 싱가포르, 미국 같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환경이 열악한 저개발국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소문이다. 국적이탈자가 재입국해 국내에 머물다 재산을 남기고 사망해 국내 거주자로 판단한 국세청이 상속세를 추징한 사례가 있다. 가족과 함께 해외로 이주했으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과 출국을 반복하며 타인 명의로 영리활동을 하다가 세금을 맞은 사례도 있다. 세금을 피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것은 비극이다.

상속세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어서면 최고세율은 50%로 치솟는다. 5만원권 지폐를 대량으로 감췄다가 넘겨주면 상속세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우선 50억원 넘는 재산은 상속세 제척 기간이 무제한이어서 국세청의 영원한 타깃이 된다. 자녀가 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숨긴 상속재산은 드러난다. 이달부터 1000만원(종전 2000만원) 이상 현금을 수수한 금융회사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하면 판매상이 은행에 입금하는 과정을 통해 현금 출처가 확인된다.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카드대금을 현금으로 입금해도 FIU를 통해 국세청에 통보된다.

생전에 넘겨주는 재산은 증여세 과세 대상인데, 사후에 상속세와 통산되고 세율도 동일해 상속증여세로 통합해 부르기도 한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상속증여세가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과 유럽 등의 세율도 높지만 한국은 증여받은 수증자가 증여세를 납부하는 방식이어서 부담이 가중된다. 상속재산 평가에서 시가 반영률이 높아졌고 신고세액공제도 10%에서 3%로 축소돼 상속세 실질 부담이 늘어난 점을 감안해 세율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과 관련된 주식에 대한 상속증여세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보유 지분율이 높은 주식의 경우는 경영권이 의제돼 30%의 할증평가가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 부족이다. 정부 예산으로 초단기 일자리를 늘려 고용지표를 분장(扮裝)하지만 양질의 기업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올해 채용인원을 대폭 줄일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고용대란을 심화시키는 규제와 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상속세의 경우 투자 및 고용과 관련된 주식은 예금이나 부동산 등의 재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세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공장을 건설하면 기업주는 ‘칙사’ 대접을 받는다. 한국 교도소에 수감됐던 신동빈 롯데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공장을 방문할 때면 주지사가 따라다니며 수행한다. 짧은 방한 기간 한국 기업주의 손을 잡고 미국 내 공장 설립을 당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세는 작년 7월 인도의 삼성 휴대폰 공장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의 고개 숙인 인사를 받던 문재인 대통령 모습과 대비된다.

노동시장 경직성과 생산성에 비해 과도하게 상승하는 인건비 때문에 중국, 베트남, 인도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의 국내 일자리 확충을 위한 통상정책도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팔아야 하는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 이전을 부추긴다. 정부는 노동규제 등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밀 분석해 국내 제조업을 살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업 승계에 대한 불안은 축소경영으로 이끈다. 상속 시점에 근접하면 상장주식의 주가 상승은 경영권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부상한다. 비상장주식은 순손익가치 가중치를 높이 반영해 과세하기 때문에 축소경영 유인으로 작용한다.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3 대 2로 반영해 평가하는데 상속 직전연도의 순손익가치 반영 비율은 절반으로 막중하다. 대주주 사망 직전연도에 경영 확대로 순이익을 두 배 늘리면 상속세는 다섯 배 정도 늘어난다. 이자율이 낮아지면 순손익 현재가치는 더 높게 평가돼 상속세는 대폭 상승한다. 상속 직전의 축소경영을 막으려면 승계하는 자녀가 주식을 처분하는 시점까지 과세이연을 허용하는 캐나다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업자산에 녹아 있는 상속재산은 사업 지속성을 통한 ‘일자리 유지와 확충’을 목표로 과세 시기를 조정하는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