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행을 묘사한 조선 화원 그림 중 현존 유일 작품으로 전하는 '통신사행렬도' 제작 시기는 기존에 알려진 1636년이 아니라 1764년 무렵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박물관이 펴내는 학술지 '미술자료' 최신호인 제95호에 실은 논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통신사행렬도의 고찰'에서 18세기 궁중 기록화 특징이 이 그림에서 확인된다는 점을 근거로 제작 시점을 18세기 중반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 그림은 제실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이 소장하다 1916년부터 1930년까지 총독관저에 있었고, 해방 이후 고서점 '통문관' 설립자 이겸로를 거쳐 1966년 중앙박물관이 매입했다.
1일 박물관이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 기록물 중 하나인 '통신사행렬도'는 1985∼1986년 일본 도쿄와 서울에서 열린 특별전에서 선보였다.
당시 '인조14년통신사입강호성도'(仁祖14年通信使入江戶城圖)라는 명칭으로 소개되면서 인조 14년(1636)에 통신사가 에도(江戶)에 들어가는 그림이라는 정보가 널리 퍼졌다.
문 연구관은 "특별전에서 1636년작이라고 공개한 것은 그림을 감상하고 적은 글인 배관기(拜觀記) 중에 김윤식(1835∼1922)이 인조 14년을 언급한 데에서 기인했다"며 "화면 어디에도 1636년 통신사행을 그렸다는 글귀나 화원 김명국의 수결(手決)과 낙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신사행렬도' 배관기 작성자가 모두 6명이며,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김윤식, 이완용, 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 순으로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문 연구관은 조선총독부 초대 정무총감을 지낸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1916년 7월에 남긴 배관기에서 1636년 부사 자격으로 통신사행에 참여한 김세렴(1593∼1646)이 지은 시를 일부 인용하면서 그림이 1636년작으로 알려졌고, 이어 김윤식은 배관기 첫머리에 '병자년(1636) 통신사행'이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역사학자인 미우라 히로유키는 견해가 달랐다.
그는 1922년 '1764년 2월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한 마지막을 생각하며 일을 재미있게 그린 것 같다'고 썼다.
이후 '통신사행렬도' 제작 시기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1655년, 1682년, 1711년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다.
하지만 문 연구관은 "방대한 행렬을 비례와 대칭을 고려해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한 점이나 화려한 채색과 금니(金泥)를 사용해 장식성을 높인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 궁중행사도와 유사하다"며 "특히 선두에 있는 의장기와 악대, 군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가는 삼사 등 행렬 순서, 의장 형색 등은 조선 후기 반차도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행렬하는 인물들과 중심열 가마채를 평행사선 구도로 배치하고 가마채 사이에 앞뒤 가마꾼을 비스듬히 두는 공간 구성은 18세기 '가례반차도'와 비슷하다"며 "전체적 구성, 구도, 채색, 기물 등을 고려하면 미우라 의견처럼 제작 시기는 1764년경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다만 문 연구관은 그림 속 행렬 방향이나 복장 등을 바탕으로 통신사가 에도로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선으로 돌아오는 것인지 확정하기는 힘들다면서도 녹색 단령(관원이 착용하는 복장)을 보면 에도로 가는 등성(登城) 행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술자료 최신호에는 이외에도 순천 송광사 불조전 '오십삼불도'(五十三佛圖), 고려 석제탁잔, 근대 여성화가 함인숙 그림이 포함된 병풍 등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