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적은 없는데 알코올은 검출되는 상황. 결론은 박씨의 ‘숙취’였다. 전날인 일요일 오전 친구들과 함께 소주 4~5병을 마신 여파가 남은 것이다. 경찰과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며 겨우 음주측정기로 잰 결과 박 씨의 혈중 알콜농도는 0.022%로 나타났다. 훈방조치 수준이지만 이날부터 강화된 윤창호법의 면허정지 기준(혈중알콜농도 0.03%)은 겨우 피한 셈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확인된 후에야 박 씨는 “어제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다”며 “윤창호법이 뭔지도 모르고 오늘부터 시행된 줄도 몰랐다”고 밝혔다.
전날 마신 술도 까딱하면 ‘면허정지’
25일부터 음주단속 기준을 강화하는 제2윤창호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기존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 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다. 25일부터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됐다. 혈중알코올농도 0.03%는 몸무게 65㎏의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사고로 인한 인명사고의 처벌을 강화하는 제1윤창호법은 지난해 말 시행됐다.
경찰은 윤창호법 시행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특별 음주운전단속을 시행했다. 언론매체를 통해 윤창호법 시행과 음주운전단속이 대대적으로 소개됐지만 시민들의 음주운전 행태는 여전했다.
같은 날 0시 38분. 두 번째 음주운전자가 적발됐다. 차에서 내린 강모씨(33)의 얼굴은 취기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083%. 40분 전만해도 면허정지에 그쳤을 수치다. 강 씨는 “홍대에서 친구들과 함께 테킬라 4잔을 마신 게 전부”라고 했다. “윤창호법이 시행된 걸 알고 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는 “조금 전 경찰에게 소개 받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어어, 거기 어디가세요!” 1시간이 남짓이 흐른 오전 1시 39분께. 단속 현장 후방에서 한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 달아다나던 흰색 다마스 차량이 후진하면서 정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것이다. 쫓아간 경찰관 손에 이끌려 나온 강모씨(49)는 혼자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로 윤창호법 시행 이전에도 면허취소인 수준이었다. 강 씨는 4년전에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무면허 운전자였다. 강 씨는 “회식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려 했는데 안 잡혀서 운전대를 잡았다”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윤창호법 시행으로 강 씨와 같은 ‘상습 음주운전범’의 기준도 강화됐다. 기존에는 3회 이상 음주운전에 적발될 경우 상습 음주운전으로 분류했지만, 윤창호법 시행으로 혈중알콜농도 수치와 상관없이 2회만 적발돼도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강 씨는 이날 현장에서 체포돼 마포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 관계자는 “윤창호법 시행으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형사처벌 수준은 물론 기준도 함께 올라갔다”며 “앞으로 음주운전으로 가중처벌을 받는 사례들이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창호법 첫날부터 면허취소 수두룩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오전 0~8시 동안 음주운전을 단속한 결과 총 153명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면허정지(혈중알코올농도 0.03~0.08%) 처분을 받은 사람은 57명, 면허취소(0.08% 이상)처분을 받은 사람은 93명이다. 측정거부를 한 사람은 3명이다. 이 중 기존에는 훈방에 그쳤던 혈중알코올농도 0.03~0.05%로 측정된 사람은 13명이었다. 술 한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면허정지를 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 면허정지 처분(0.08~0.10%)에서 면허취소로 강회된 처벌을 받은 사람도 32명이나 됐다.
경찰은 윤창호법 시행을 맞아 두 달간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시행한다. 음주운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오후 10시∼오전 4시에 집중 단속을 한다는 방침이다. 유흥가·식당·유원지 등 음주운전 취약장소와 자동차 전용도로 진·출입으로 등에서는 20∼30분 단위로 단속 장소를 수시로 옮기는 ‘스폿이동식’ 단속도 병행할 예정이다. 특히 음주 사고가 잦은 토요일에 전국 동시 단속을 하고, 지방경찰청별로도 자체적으로 지역 실정을 고려해 단속을 벌인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 기준이 강회된 만큼 전날 술을 마셨다면 다음날 몸 상태가 건강해도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당부한다”며 “술 한잔만 마시더라도 음주운전이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