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뜬다! 뜬다!”지난 8일 오후 1시 한양대 제2공학관. 3차원(3D) 프린터 등 실험 보조기구가 가득한 한양대 팹랩(제작실험실)에 히잡을 둘러쓴 아랍에미리트(UAE)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저마다 놀란 표정으로 탄성을 질렀다. 초전도체(전기저항이 없는 물체) 물질에 저온의 액화질소를 부으면 자석이 공중에 뜨는 초전도체 실험을 직접 해보고 나서다. 이날 무선 충전기를 제작하고 초전도체 실험을 한 파트마 압델라(15)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UAE 앰배서더 프로그램 진행한 한양대한양대가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UAE의 우수 고교생에게 이공계열 단기 집중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국내 대학 중동 진출의 막을 올렸다. 지난달 30일 환영식을 시작으로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UAE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UAE 앰배서더 프로그램은 UAE 교육부가 엘리트 인재 양성을 목표로 매년 500여 명의 학생과 교원을 교육 선진국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UAE 왕세제가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당시 인적 교류의 일환으로 언급되면서 한양대가 이 프로그램을 추진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한양대는 지난해 5월 한국 외교부 초청으로 방한한 후세인 알하마디 UAE 교육부 장관이 한양대를 찾을 때부터 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한양대는 UAE 교육부의 요청으로 이공계열 커리큘럼을 준비했다. 프로그램 정식 명칭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STEM 교육’이다. 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약자다. UAE에서 선발된 40여 명의 고교생은 지난달 30일부터 2주 동안 자동차공학, 반도체 등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 및 기술을 배웠다. 샤다드 알야마히(16)는 “비행기 조종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3년 뒤 한양대에 입학해 꼭 꿈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UAE가 이공계열 교육을 한양대에 부탁한 이유는 유한한 석유자원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번 프로그램 인솔자이자 알 누만 빈 무크렌 공립학교 교감인 마즈하 다그허는 “UAE는 석유 부국이지만 석유 고갈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도 학생들이 원자력 등 한국의 우수한 에너지 관련 기술을 보고 시야를 넓히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중동 교육 진출의 교두보”국내 최초의 프로그램인 만큼 한양대는 성공적인 프로그램 수행을 위해 최고 교수진으로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반도체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박재근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가 반도체 원리 강의를 맡았다. 고분자화학 석학인 이영무 전 총장도 에너지공학 관련 강의를 했다. 자율주행차 분야 권위자인 선우명호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도 ‘미래의 자동차 공학기술’을 주제로 UAE 학생들을 가르쳤다.단순히 이론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전에 강의를 들으면 오후에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오전에 배운 이론의 결과물을 제작해보는 워크숍 시간을 가진다. 학생들을 인솔한 신디야 살렘 라흐마 UAE 교육부 커리큘럼담당자는 “이론 강의와 함께 다양한 실습,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통해 학생들이 한국의 우수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한양대는 UAE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통해 중동의 교육 수요를 선제적으로 확보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UAE 앰배서더 프로그램 환영식에서 만난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이번 UAE 앰배서더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2~3년 뒤 UAE 유학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최고 수준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면서 UAE를 넘어 중동 전체의 교육 수요를 적극 확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교육도 이제 산업”이라며 “우리의 선진 교육 시스템을 중동에 소개하고 이식함으로써 국가 전체적인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이공계열 출신 대학 총장의 비중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높아져왔다. 한국경제신문이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10개 주요 사립대와 서울대 부산대 등 10개 주요 국공립대를 시대별로 구분해 분석한 결과 1950년대까지 10%에도 미치지 못하던 이공계열 출신 총장 비중은 현재 절반까지 증가했다.1945년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문과계열 출신 총장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이 시기는 20개 주요 대학이 전문학교나 단과대학 등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기 시작하던 때다. 현재의 종합대학 체제에서 새로 취임한 총장은 26명에 불과했다. 26명의 신임 총장 중 문과계열 학문을 전공한 총장이 15명에 달했다. 반면 의학 등을 제외한 순수 이공계열 출신 총장은 2명으로 전체 총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6%에 그쳤다.이 시기엔 특히 철학을 전공한 총장이 많았다. 1950년대까지의 총장 26명 중 7명이 철학과 출신이었다.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1957년 정식 출범한 연세대의 백낙준 초대 총장은 미국 예일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성균관대 2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훈구 전 총장도 철학을 전공했다. 중앙대 이화여대 충남대 전북대도 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초대 총장을 맡았다. 철학 다음으로는 법학을 전공한 총장이 5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과 이선근 성균관대 3대 총장은 역사학을 전공했다.경제개발·군사독재 시절인 1960~1970년대에는 이공계열 출신 총장이 소폭 증가했다. 이 시기 20개 대학에서 새로 취임한 총장은 모두 76명으로, 이 중 이공계열 출신은 11명이었다. 전체 총장에서 이공계열 출신 총장 비율은 14.4%로 1950년대까지의 이전 시기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이 시기에는 철학·법학 일변도였던 과거와는 달리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공 출신 총장이 다수 등장했다. 법학 전공 총장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제학이 9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철학 전공 총장은 4명에 불과해 이전 시기보다 크게 줄었다.1980~1990년대에도 이공계 출신 총장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 시기 새로 취임한 대학 총장은 모두 88명이었다. 이 중 이공계열 출신은 18명으로 전체 총장에서 20.4%를 차지했다.2000년대 이후론 이공계열 출신 총장 비율이 본격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0년부터 2010년대까지 주요 20개 대학에 새로 취임한 총장 85명 중 이공계열 출신은 28명으로 전체의 32.9%에 달했다. 특히 올해 들어 이공계열 출신 교수가 신임 총장으로 잇달아 선임되면서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현재 20개 대학 총장 중 이공계열 출신 총장은 10명으로 그 비율이 50%다. 과거 ‘소수파’에서 말 그대로 ‘대세’가 된 셈이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이공계 출신 대학총장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 들어 총장이 바뀐 서울의 5개 주요 대학 중 서울시립대를 제외한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총장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한국경제신문이 1일 국내 주요 사립대 10곳(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가나다 순)과 국·공립대 10곳(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등 20대 대학의 총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공계 출신이 50%로 집계됐다.이들 대학에서 1945~1959년 7.6%에 불과하던 이공계 출신 총장 비중은 14.4%(1960~1979년), 20.4%(1980~1999년), 32.9%(2000~2019년)로 꾸준히 증가하다 올해 처음 절반이 됐다.대학에서 재정난이 심화되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풍토가 확산하면서 이공계 출신 총장이 각광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공계 출신 총장들은 기업과의 산학협력을 이끌어내거나 각종 정부 지원사업을 유치하는 데 두각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 첫 공과대 출신 총장인 정진택 총장은 “세계대학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학총장의 70~80%가 이공계 출신”이라며 “이공계 출신 대학총장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産學협력·국책과제 목매는 대학들…"능력있는 이공계 총장 모셔라"올 들어 국내 주요 대학에서 이공계 출신 총장이 잇달아 등장했다.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주요 4개 대학의 신임 총장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대학의 재정난이 심해지면서 산학협력 확대와 연구과제 유치 등이 중요해진 것이 이공계 총장의 수요를 높였다는 분석이다. 이공계 교수들도 과거 ‘실험실에만 박혀 있다’는 세간의 인식에서 벗어나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한 고려대 교수는 “이공계 교수들이 대거 대학 총장을 맡는 것은 실용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며 “기업들이 각종 스펙을 갖춘 이공계 학생을 선호하듯이 대학도 이공계 출신 교수를 총장으로 모시려 한다”고 말했다.상아탑 허무는 이공계 총장들올해 취임한 이공계 총장들은 정계, 산업계 등에서 풍부한 학교 밖 경력을 쌓았다. 지난 2월 취임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물리천문학부)은 작년 9월 국회의원직을 내던지고 총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오 총장은 2016년부터 국민의당(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도 일했다.1월 취임한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소프트웨어학과)은 산업계 경력이 풍부하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대우중공업 기술연구소에서 주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엔 삼성SDS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다.정진택 고려대 총장과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모두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산업계와 협력하면서 ‘상아탑’을 허문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 총장은 2016년부터 고려대 부속 산학연 종합연구단지인 테크노콤플렉스에서 원장을 지냈다.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등이 공동 기술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테크노콤플렉스를 거쳐갔다. 김 총장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2011년부터 5년간 산학협력단장을 맡았다.이들 총장은 연구 성과와 산학협력 확대를 내걸었다. 오 총장은 “질적으로 탁월한 연구를 주도하겠다”며 “임기 내 10개 연구 분야에서 세계 10위권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정 총장은 자연계 기초교양관 설립과 병역특례지정 연구소 확대 등 연구환경 강화를 약속했다. 신 총장과 김 총장은 융합교육 등 실용적인 교육환경 조성을 강조하고 있다.“사업 잘 따오고 대학 순위 올린다”이공계 출신 교수가 대거 총장직을 맡은 것은 이들이 대학의 재정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 주요 대학 10곳의 역대 총장(137명) 중 의학, 보건학 등 의학계열을 제외한 순수 이공계 출신은 12.4%(17명)에 불과하다. 그마저 이공계 교수가 많아 총장 선거에서 유리한 서울대가 7명, 전통적으로 이공 계통이 강한 한양대가 4명이다.상황이 반전된 것은 2011년 무렵 대학등록금이 동결·인하 추세로 접어들면서다. 액수가 큰 정부 과제 등을 유치하는 데 이공계 출신 총장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허 기술 이전 등의 연구 성과는 교육부 지원사업에서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첫 이공계 출신 이화여대 총장이던 최경희 전 총장(과학교육과)은 2016년 정부 신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싹쓸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 전 총장은 당시 총 지원금이 2012억원에 달한 프라임사업(이공계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사업) 등을 유치했다.이공계 출신 총장은 기업과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도 유리하다.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평가받고, 연구과제를 유치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과학기술 관련 기부금도 적지 않다. 최근 서울대가 대덕전자로부터 500억원을 기부받은 것도 오 총장 취임의 영향이 컸다는 후문이다. 대덕전자 관계자는 “과학에 정통한 오 총장이 기부금을 과학기술 발전에 적절하게 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2010년대 들어 활발해진 대학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고려대는 첫 이공계 총장인 김병철 전 총장(농학과) 취임 후 상하이교통대가 발표한 ‘2014 세계대학평가’ 순위에서 전년 대비 90단계 오른 224위를 기록했다. ‘최상위 피인용 연구자 수’ 등의 지표에서 점수가 대폭 올랐다.학내 소통은 과제이공계 총장들이 높은 기대를 받으며 취임하지만 재임 중 ‘학내 리더십’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인문계가 강세를 보이는 대학에선 ‘대의’를 위해 이공계 장려 정책을 펴도 ‘제 식구 챙기는 것이냐’는 비판이 많다. 한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총장이 이공계 출신이었을 때 이런 비판이 많아 오히려 관련 사업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인문계와 이공계의 다른 연구 풍토 때문에 학내 교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는 “과거 이공계 총장이 이공계 분야 연구비 확대를 추진한 적이 있는데, 인문계 교수들이 연구비를 교수 개인 돈으로 알고 반대가 적지 않았다”며 “결국 갈등만 일으키다가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조아란/정의진/이현진/장현주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