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으로 불리는 건물이다. 원래 명칭이 ‘신제품 작업소(New Product Works)’인 이곳에는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 제품 7만여 점이 전시돼 있다. 하인즈의 보라색 케첩, 펩시콜라의 투명콜라 등이 인기 전시물이다.

관람료가 100달러(약 12만원)를 넘지만 기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CNN은 “실패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성공을 모색하는 미국 기업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은 실패에 비교적 관대한 나라다. ‘실패를 수치가 아니라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관문’으로 여기는 미국 특유의 개척정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에서도 실패가 가장 흔하고, 실패에 가장 관대한 곳이 실리콘밸리다.

글로벌 혁신의 산실이자 인재 집결지인 이곳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1%에 지나지 않는다. ‘실패 확률 99%’인 이곳의 창업자들은 “시도하는 데 실패하지 말고, 실패하려고 시도하라”는 선배 창업자들의 조언을 곱씹는다고 한다. 실패가 다반사이지만 학력과 인종, 성별의 불리함을 단번에 극복하고 ‘대박 신화’를 꿈꿀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실패 공유 콘퍼런스 ‘페일콘(FailCon)’도 이런 풍토에서 탄생했다. 이 콘퍼런스의 모토는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자’다. 에어비앤비 창업자 조 게비아 등이 나와 자신의 실패담을 털어놓는다. “실리콘밸리의 저력은 ‘실패의 자산화’가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런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모든 실패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실패만을 인정하고 받아준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여성 창업자들의 “실패하더라도 좋은 평판을 남기라”는 조언(한경 6월 12일자 A18면)은 이런 미국 벤처생태계의 엄정한 이면을 보여준다. 유아용 앱(응용프로그램) 회사인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 경력단절 여성 조력기관인 심플스템스의 김도연 대표, 뇌질환 진단기술을 개발 중인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구동성으로 신뢰와 주주존중을 강조한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주변에서도 인정하는 ‘성공적인 실패’만이 재기를 꿈꿀 수 있다.

‘성공적인 실패’는 실패학 창시자인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실패학의 법칙》에서 당부한 ‘신뢰와 실패의 자산화’와 일맥상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수치로 여기는 바람에 실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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