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감독 ‘바닷마을 다이어리’ 촬영지
에노덴을 타고 마을 한가운데를 달리다 처음 내린 곳은 에노시마역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바다 풍경은 대부분 에노시마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세 자매가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단골 식당, 우미네코(바다고양이)에서 가마쿠라의 명물 시라스동(잔멸치덮밥)을 맛보는 것은 덤이다.
기차가 지나는 곳마다 다양한 풍경 펼쳐져
12분 간격으로 지나는 에노덴을 기다려 잔잔한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마을, 이나무라가사키역에 내리면 철로를 따라 늘어선 집들이 운치 있다. 마을에는 천천히 달리는 에노덴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음식점 요리도코로가 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고등어 정식도 일품이지만 식당 창문 앞을 덜컹거리며 지나는 에노덴의 이색적인 풍경 때문에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다시 에노덴을 타고 영화 속 네 자매가 사는 집이 있는 고쿠라쿠지역에서 내렸다. 역 플랫폼은 둘째 요시노와 막내 스즈가 출근하고 등교하는 길에 열차를 기다리던 장면에 나온다.
유명 작가의 흔적 느낄 수 있는 문학관
하세역에서 한 정거장을 더 가면 유이가하마역이 나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곳은 아니지만 가마쿠라와 인연이 깊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 문학사의 획을 그은 작가들의 저서와 원고, 애장품이 전시된 가마쿠라문학관이 있다. 1936년 지어진 문학관 건물의 기와지붕과 처마는 일본풍이고, 모자이크는 서양의 아르데코 양식이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한데 엉켜 있다. 장미가 피는 계절의 정원은 화려하다.
유이가하마역에서 두 정거장을 더 달려 에노덴의 종착지, 가마쿠라역에 내리면 가마쿠라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 거리, 가마쿠라 고마치도리가 이어진다. 특산품을 파는 가게, 음식점, 골동품 가게가 양쪽 길가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가마쿠라의 명물을 구경하다 길의 끝에 다다르면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신사가 나온다. 가마쿠라 막부를 열었던 미나모토노 요리모토가 1063년 유이가하마 해안 근처에 지은 사당을 옮겨와 1191년에 세운 신사다.
오랜 문화유산을 품은 가마쿠라에 어느 도시보다 긴 여운이 남는다. 바닷마을에 낭만 가득한 전차가 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그대로 녹아 있는 풍경 속을 걸으면 가족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와서일 것이다.
가마쿠라=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