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설득에 뛰어난 송강호, 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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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들려주는 '기생충' 관람 포인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양극화 문제 다룬 블랙코미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양극화 문제 다룬 블랙코미디
“관객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마조마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한국 관객의 반응이 제겐 가장 중요합니다. 영화가 남긴 의미는 2~3주 뒤에나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국내 흥행 여부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기생충은 개봉을 하루 앞둔 29일 54.2%(낮 12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의 실시간 예매율을 기록했다. 37만4850명의 예매 관객을 확보해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기생충은 양극화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다룬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보기 위해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 발을 들인 뒤 가족이 한 명씩 입성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지난 26일 수상 직후 귀국해 국내 개봉 준비에 바쁜 봉 감독을 2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핵심 설정인 가난한 자와 부자를 어떻게 그렸는지 들려줬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착하고 정의롭고 명분 있는 약자와 가난한 자, 그 반대편에 탐욕과 폭력으로 갑질을 일삼는 부자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저는 현실의 부자는 박 사장 가족처럼 더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나름 순진한 구석과 세련된 매너도 갖췄지만 묘한 히스테리가 있습니다.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집에서 일하던 존재를 몰아내고 입성한 터라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내비칩니다. 모두 적당히 착하고 나쁜 모습이 뒤범벅돼 있습니다. 그래야 사실적인 느낌이 살아날 것으로 봤습니다.”
악한 의도를 기획한 자, 즉 적극적인 악당이 없는데도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봉 감독은 선악이 명쾌하게 갈리는 상황이 아닐 때 오히려 관객 감정의 진폭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문에서 읽는 우발적인 범죄, 묻지마 범죄 뉴스가 던지는 원초적인 두려움과 불안감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감정을 폭발하는 모티프로 ‘냄새’를 사용했다.
“기생충은 인간과 인간의 거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공간적으로 격리돼 있습니다. 그러나 과외선생, 운전기사, 가정부 등 가사노동자들은 부자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부부간 내밀한 대화에서 냄새를 거론하는데, 그런 사적인 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데서 긴장과 서스펜스가 나옵니다. 냄새는 카메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으로 미묘함을 표현했습니다.”
봉 감독은 기생충 주연배우인 송강호에겐 관객을 설득하고 제압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작품 네 편을 함께 작업한 송강호에 대해 봉 감독은 “작품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며 “내 영화에는 기이하거나 독특한 상황이 많지만 강호 형님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상황을 믿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제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죠. 배우 송강호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쓰면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강호 형님이라면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시상식 후 “송강호가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작품 자체가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남우주연상을 줄 수 없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칸영화제는 3등격인 심사위원상 이상부터는 남녀주연상을 겸해서 줄 수 없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송강호의 반응이 궁금했다. 봉 감독은 “강호 형님은 기쁘고 좋지만, 우리 영화를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했다”고 전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갔다. 봉 감독은 작품 속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간을 차별화하는 데 신경 썼다고 했다.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공간에는 자연광이 아침녘에 잠깐 들어올 만큼 빛이 귀하지만, 부잣집은 정원을 향한 면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설정했습니다. 도입부에서는 반지하방에 작은 빛이 들지만, (파국적인 결말의) 후반부에는 밤처럼 캄캄해지도록 했죠. 배우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공간 배치가 잘 보일 겁니다.”
반지하방에서 자기 방을 여동생에게 주고 소파에서 잠을 자던 기우는 부잣집에서 침대에 벌러덩 누워본다. 후반부에 기우가 돈을 벌어 부잣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관객은 믿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계산해보니 기우의 평균임금으로 부잣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리더군요. 기우는 묘하게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캐릭터입니다. 마냥 ‘앵그리 영맨’이 아닌 게 요즘 젊은이 모습 같아요.”
봉 감독은 마지막으로 영화를 가볍게 봐달라고 주문했다. “관객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봐주면 감독으로서는 고맙죠. 하지만 수상작 마크를 달았다고 너무 엄숙하고 진지하게 관람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국내 흥행 여부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기생충은 개봉을 하루 앞둔 29일 54.2%(낮 12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의 실시간 예매율을 기록했다. 37만4850명의 예매 관객을 확보해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기생충은 양극화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다룬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보기 위해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 발을 들인 뒤 가족이 한 명씩 입성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지난 26일 수상 직후 귀국해 국내 개봉 준비에 바쁜 봉 감독을 2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핵심 설정인 가난한 자와 부자를 어떻게 그렸는지 들려줬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착하고 정의롭고 명분 있는 약자와 가난한 자, 그 반대편에 탐욕과 폭력으로 갑질을 일삼는 부자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저는 현실의 부자는 박 사장 가족처럼 더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나름 순진한 구석과 세련된 매너도 갖췄지만 묘한 히스테리가 있습니다.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집에서 일하던 존재를 몰아내고 입성한 터라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내비칩니다. 모두 적당히 착하고 나쁜 모습이 뒤범벅돼 있습니다. 그래야 사실적인 느낌이 살아날 것으로 봤습니다.”
악한 의도를 기획한 자, 즉 적극적인 악당이 없는데도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봉 감독은 선악이 명쾌하게 갈리는 상황이 아닐 때 오히려 관객 감정의 진폭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문에서 읽는 우발적인 범죄, 묻지마 범죄 뉴스가 던지는 원초적인 두려움과 불안감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감정을 폭발하는 모티프로 ‘냄새’를 사용했다.
“기생충은 인간과 인간의 거리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는 부자와 빈자가 공간적으로 격리돼 있습니다. 그러나 과외선생, 운전기사, 가정부 등 가사노동자들은 부자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부부간 내밀한 대화에서 냄새를 거론하는데, 그런 사적인 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데서 긴장과 서스펜스가 나옵니다. 냄새는 카메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으로 미묘함을 표현했습니다.”
봉 감독은 기생충 주연배우인 송강호에겐 관객을 설득하고 제압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작품 네 편을 함께 작업한 송강호에 대해 봉 감독은 “작품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며 “내 영화에는 기이하거나 독특한 상황이 많지만 강호 형님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상황을 믿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제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죠. 배우 송강호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쓰면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강호 형님이라면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시상식 후 “송강호가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작품 자체가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남우주연상을 줄 수 없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칸영화제는 3등격인 심사위원상 이상부터는 남녀주연상을 겸해서 줄 수 없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송강호의 반응이 궁금했다. 봉 감독은 “강호 형님은 기쁘고 좋지만, 우리 영화를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했다”고 전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갔다. 봉 감독은 작품 속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간을 차별화하는 데 신경 썼다고 했다.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공간에는 자연광이 아침녘에 잠깐 들어올 만큼 빛이 귀하지만, 부잣집은 정원을 향한 면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설정했습니다. 도입부에서는 반지하방에 작은 빛이 들지만, (파국적인 결말의) 후반부에는 밤처럼 캄캄해지도록 했죠. 배우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공간 배치가 잘 보일 겁니다.”
반지하방에서 자기 방을 여동생에게 주고 소파에서 잠을 자던 기우는 부잣집에서 침대에 벌러덩 누워본다. 후반부에 기우가 돈을 벌어 부잣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관객은 믿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계산해보니 기우의 평균임금으로 부잣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리더군요. 기우는 묘하게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캐릭터입니다. 마냥 ‘앵그리 영맨’이 아닌 게 요즘 젊은이 모습 같아요.”
봉 감독은 마지막으로 영화를 가볍게 봐달라고 주문했다. “관객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봐주면 감독으로서는 고맙죠. 하지만 수상작 마크를 달았다고 너무 엄숙하고 진지하게 관람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