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년간 기소 '0건' 공표죄 사문화…"수사공보 반론권 보장해야"
"피의사실 흘려 압박…필요할 땐 공표죄 내세워 취재 회피"
검찰 등 수사기관이 무분별하게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엄격히 처벌해야 하며, 이를 위한 실효적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는 지난 27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피의사실공표 사건'의 최종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권고했다고 28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현행법이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수사기관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지나치게 모호한 '예외적 공보 사유'를 마련해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여론전을 펼치는 등 관행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언론 보도가 수사에 부담이 될 경우 검찰은 피의사실공표죄를 내세워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과거사위는 지적했다.

과거사위 분석 결과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피의사실공표 사건 347건(연평균 32건)이 접수됐으나 기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 기간 피의사실공표가 특히 논란이 된 사건은 ▲ 송두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 이석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 광우병 PD수첩 사건 등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의 경우 언론에선 송 교수가 입국한 다음 날인 2003년 9월 23일부터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송 교수에게 적용된 구체적인 혐의 사실, 처벌 가능성, 혐의 사실 시인 여부, 전향 의사를 보이지 않을 경우 송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수사기관 의견 등이 기사에 여과 없이 담겼다.

검찰은 그해 11월 19일 송 교수를 구속기소 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중 상당 부분에 무죄가 선고됐다.

송 교수 수사를 담당한 국정원 차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수사자료를 공표한 국회의원 등이 2013년 11월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발됐으나 2년 후인 2005년 11월 전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의 경우 검찰이 1991년 5월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까지 필적감정 결과 등 상세한 수사 내용이 수사팀의 구두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공표됐다.

강씨 유족이 2015년 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일반 국민의 관심 대상이었고 국민에게 알릴 필요성이 컸다 하더라도 피의사실공표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의 엄격한 적용을 담보해야 한다"며 "공소 제기 전이라도 반드시 공보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선 별도 입법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범정부 차원의 '수사공보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공보 규정을 폐지하고, 대신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보 대상 범죄는 구체적으로 보도의 공익적 이익이 있는 범죄로 제한돼야 한다"며 "수사공보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하고, 공보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