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車 고율관세' 연기는 통상협상용…車 경쟁구조 변화 대비해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결정을 최장 6개월 연기했다. 미국은 관세협상 대상국으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을 적시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 등 대미(對美) 자동차 및 부품 수출국들이 잠시 안도의 숨을 쉴 수는 있겠지만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미국이 중국과의 통상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또 다른 적을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 통상협상은 중국 매체가 미국에 진로 변경을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이 ‘빅딜’이 아니라 ‘인민전쟁’으로까지 표현할 정도로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의 협상을 일단락 짓고 진행 중인 일본 및 EU와의 통상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결정을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1960년대 냉전시대에 법제화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동원해 주요 대미 자동차 및 부품 수출국에 최고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한 배경에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 제조업 중심지인 미국 중서부, 특히 자동차산업 중심지인 오대호 주변의 미시간, 오하이오, 일리노이주 등지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에게 빚을 갚는 것은 물론, 그동안 자동차산업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미친 영향과 미래 전망 등을 고려해 자국 자동차산업의 부활을 선언했다.

자동차산업이 국가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자동차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중산층 형성에 기여했다.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은 미국이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시간주에 자리잡고 있는 이동성센터(American Center for Mobility)의 고속자율주행 시험장은 포드의 공장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55분에 B-24 폭격기 한 대를 생산했던 곳이다. 또한 지프(Jeep)차, 타어어 제조 등에 사용하고 있는 합성고무, 위성항법기술(GPS)과 인터넷망(월드와이드웹)은 군이 개발한 기술을 응용한 제품이다.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자율주행차 역시 미 국방부가 전쟁에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다.
[뉴스의 맥] '車 고율관세' 연기는 통상협상용…車 경쟁구조 변화 대비해야
1979년 수입 규제로 日 공장 유치

미국은 1964년 유럽과의 통상마찰이 격화되고 자국 자동차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고수익 픽업트럭 시장에 유럽 자동차업체가 진출하려 하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원천 봉쇄했다. 또 1979년 2차 석유파동 이후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자 수입수량 규제를 통해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억제했다. 이처럼 미국의 수입 규제가 강화되자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미국 시장에 공장을 설립했다.

미국은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대미 수출국과 쌍무협상을 벌여 왔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금융산업과 정보기술(IT)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이 성장하자 자동차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를 완화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하자 미국 정부는 500억달러를 투자해 GM을 수렁에서 건져내고 크라이슬러를 피아트에 매각했다. GM의 파산은 당시 미국민들에게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정부와 산업계는 130여 년 만에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동력 및 자율주행 자동차로 변화하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전기동력 자동차 분야에는 테슬라와 같은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이어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에서는 구글, 애플, 버라이즌과 같은 정보통신기술 업체와 우버와 같은 새로운 기술 플랫폼 기업들이 도전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자율주행 자동차 상용화의 선도국이 됐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래차와 첨단기술 부품의 수입을 선제적으로 막을 것이라는 추측도 자아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동원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런데 미국은 최근 캐나다, 멕시코와의 협상에서 3국 간 철강과 알루미늄 교역을 무관세화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3월 철강 관세를 면제받았지만 2017년의 3분의 1로 수출 물량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의 철강·알루미늄산업이 대미 수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이런 배경에는 미국이 북미에서 완결형 제조업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6개월간 밀어내기 수출은 역효과

일각에서는 일본과 EU가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가로 지정되고, 한국은 제외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관세 부과 결정이 6개월 연기된 상황에서 과거 철강산업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밀어내기 수출을 해 대미 자동차 무역수지 흑자가 다시 증가하면 우리 자동차산업이 고율 관세나 수출물량 규제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경쟁국인 일본과 EU가 로비를 강화할 것으로 보여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중국몽(中國夢)을 깨뜨리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려고 1980년대 후반에 전가의 보도로 꺼내 들었지만 발동하지는 않은 ‘슈퍼 301조’와 같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할 경우 중국을 제외한 세계 자동차 시장 질서에 변화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이 한국 자동차와 부품 수입을 제한할 경우에 대비해 수출 시장 다변화와 수출 제품 고부가가치화라는 진부한 대안이 다시금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우리 자동차업체의 점유율이 낮아진 가운데 신흥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전략은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중국 자동차업계가 이들 시장을 공략하고 신흥국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입 제품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 미래전략 실행해야

국내 자동차산업 이해관계자들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외친 지도 십수 년이 됐다. 하지만 우리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혁신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국내 부품업계가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기술력, 품질, 규모의 경제와 원가 면에서 선진국과 중국 업체에 밀려 방황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6개월 내에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내 자동차산업 이해관계자들은 경쟁국의 대응전략과 우리 수출전략의 문제점,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몰고 올 경쟁구조의 변화 등을 정밀하게 진단해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우리 자동차산업이 미국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 점유율을 유지·강화하면서 전기동력 자율주행 자동차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할 기반을 구축해야만 국내 제조업뿐 아니라 경제가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