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 화백이 베네치아 팔라초카보토미술관 3층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이강소 화백이 베네치아 팔라초카보토미술관 3층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현대미술 올림픽’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이탈리아 국왕의 제25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로 창설돼 격년제로 열린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관의 본 전시를 중심으로 카스텔로 공원 내 28개 독립 전시관에서 세계 각국의 전시를 함께 여는 게 특징이다. 1993년에는 한국 출신 미술가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공동 대표로 참가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이때 얻었다. 2년 뒤 백남준의 도움으로 공식 개관한 한국관에서 설치미술가 전수천이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을 발표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런 흐름을 잇는 한국 예술전사들이 11일(현지시간) 개막해 오는 11월24일까지 이어지는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와 크고 작은 특별전에 대거 출전했다. 한국 단색화가 윤형근을 비롯해 행위예술의 선구자 이강소, 설치미술가 이불, 미디어 아티스트 정은영 등 쟁쟁한 미술가 10여 명이 한국 특유의 작품으로 국적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며 ‘K아트’의 우수성을 알린다.

이불, 강서경 등 본전시 참가

설치미술가 이불
설치미술가 이불
‘예술 여전사’ 이불과 강서경, 아니카 이는 ‘당신은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나요’라는 주제로 열린 본 전시에 참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이불은 남북한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조망으로 제작한 4m 크기의 대형 설치물을 내놨다.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예술로 승화시켜 국제 미술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국제갤러리 전속작가 강서경과 뉴욕에서 활동하며 구겐하임미술관 휴고보스상을 받아 주목받은 아니카 이도 본 전시에 참가해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보여준다.

올해 한국관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의 영상 미디어 설치작업으로 꾸몄다. 전시회 주제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 소설가 이민진이 재일동포 이민의 역사를 다룬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따온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잡았다. 남화연은 식민과 냉전 속 국가주의와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다룬 신작 ‘반도의 무희’를 전격 공개했다. 제이 진 카이젠은 부모에게 버려진 딸의 이야기를 담은 설화 ‘바리데기’를 바탕으로 한국 근대화 과정 속 여성들의 ‘이산(離散)’을 다룬 영상작품 ‘이별의 공동체’를 내보였다. 여기에 정은영이 생존 여성국극(女性國劇) 남역배우 이등우를 소재로 한 비디오 아트를 추가했다.

단색화·행위미술도 ‘출격’

윤형근 화백
윤형근 화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장르인 단색화와 행위미술도 베네치아에 ‘출격’했다. 단색화 대표작가 윤형근의 회고전은 11월 24일까지 베네치아 포르투니미술관에서 펼쳐진다. 국내외 무대에서 ‘단색화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리던 작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1970~2000년 시기별 작품은 물론 드로잉과 아카이브 등 100여 점이 미술 애호가를 맞는다. 특유의 청색과 암갈색을 섞은 엄버(umber)색의 작품이 한국 미술의 심오한 깊이를 일깨운다.

한국 1세대 아방가르드 작가 이강소는 지난 7일 팔라초카보토미술관에서 ‘비커밍(Becoming)’을 주제로 개인전을 시작했다. 최근 국제 미술계가 관심을 보이는 한국 행위미술의 본질을 탐구하고 재조명하는 성격의 전시회여서 더 주목된다. 다음달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에는 실험성 짙은 1970년대 ‘닭 퍼포먼스’와 ‘여백(갈대)’ 작품부터 근작 평면회화까지 20여 점을 내보인다. 7일 아르세날레 인근 해군장교클럽 베니스미팅 포인트에서 사흘간 열린 한국 현대미술 팝업전 ‘기울어진 풍경들-우리는 무엇을 보는가’에는 오인환, 듀오 문경원·전준호, 함양아, 노순택 등 9개 팀이 참가해 한국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알렸다.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국제 미술계가 한국 현대미술에 이렇게 관심이 높은 줄 몰랐다”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조용한 용광로 같은 울림이 강하다”고 전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리투아니아 국가관이 수상

제58회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리투아니아 국가관에 돌아갔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11일(현지시간) 공식 개막식 겸 시상식에서 리투아니아 국가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다. 리투아니아관의 전시 ‘태양과 바다(Sun & Sea)’는 전시장을 인공해변으로 조성, 기후변화 문제를 일종의 공연처럼 풀어냈다.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작업이 많은 가운데 ‘태양과 바다’는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로움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79명(팀)이 참가한 본전시 작가 중에서는 미국 영화감독이자 아티스트인 아서 자파(59)가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위한 은사자상은 키프로스 공화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하리스 에파미논다(39)가 받았다. 본전시의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은 멕시코의 테레사 마르골레스(56),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오토봉 엥캉가(45)가 수상했다. 한국은 수상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