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조 의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 될 것으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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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의거'의 상징물인 단도의 모습은 의거 후 91년간 그 모습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
학계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단도 사진이 조 의사 연구와 선양 사업에 큰 도움이 되는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대만도서관 측의 협조를 얻어 12일 이 도서관 내 일반인 통제 구역인 근대 도서 수장고에서 들어가 조 의사의 단도 사진이 수록된 책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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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1928년 의거 당시 대만과 일본, 한국 등지의 신문 매체를 통해 공개되지 않은 조 의사의 단도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당시 대만 내 일본 수사 기관의 증거 자료의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조 의사 관련 신문 기사나 판결문 등 공개 기록에는 조 의사가 단도로 거사에 나섰다는 점이 나타나 있지만 정작 이 단도의 모습은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
일본 식민 당국의 인식을 반영해 '사용한 흉기'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 속 단도는 길이가 한 뼘 정도의 짧은 칼이었다.
조 의사가 일본 군경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칼을 몰래 갖고 있기 위해 작은 단도를 거사에 쓸 무기로 택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또 '범행 현장'이라는 설명과 함께 조 의사 의거 직후 타이중 현장 사진도 함께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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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의사는 1928년 품에 숨기고 있던 단도를 꺼내 들고 차에 탑승한 채 타이중시 중심 도로를 지나던 구니노미야를 덮쳤다.
조 의사는 독을 바른 단도로 일격을 가하려 했지만 구니노미야의 곁을 지키던 경호관에게 가로막혔다.
놀란 운전기사가 가속 페달을 밟아 차량이 멀어지자 조 의사는 손에 쥔 단도를 구니노미야를 향해 던졌다.
날아간 단도는 구니노미야의 상체를 스쳐 지났다.
구니노미야는 찰과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듯했지만 이로부터 8개월 만인 이듬해 1월 복막염으로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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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의거' 여파로 대만 총독이 경질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은 한국의 의열 투쟁 사상 전례가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모습이 확인된 단도는 조 의사 의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 의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주 무대가 아닌 대만에서 순수한 단독 거사에 나섰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 확인된 사료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중이 그를 기억할 매개물인 사료가 없다는 점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조명하 의사 연구회의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는 "조 의사가 쓴 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지금껏 학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중요한 사료"라며 "향후 조 의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 의사의 장손인 조경환씨는 "할아버지가 쓰신 단도 사진을 보고 정말로 놀랐다"며 "그간 할아버지께서 독검을 이용해 거사에 나셨다고 말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물 사진이 나타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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