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폭력적이었던 아빠와 낳아준 값을 내놓으라며 돈을 요구하는 엄마까지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버틴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상경해 어엿한 30대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그러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처음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단 생각이 든 A씨.
어려운 사정을 얘기했지만 남자친구는 물론, 그의 부모님까지 따뜻하게 A씨를 맞아줬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 날짜를 잡았고, A씨는 예비 시부모와 자주 만나며 교류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친구 부모님이 "며느리도 자식이다", "아들은 무뚝뚝하고 못 챙겨도 며느리는 챙겨야 한다", "며느리가 먼저 행동해야 아들도 알고 효도한다" 등의 말을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
이런 말을 들을 때면 A씨는 매번 난감하고 언짢았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적극적으로 "아들이 불효자인데 누구한테 바라냐"라고 반박하거나 A씨에게 직접 사과를 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트를 하고 있는 도중 남자친구 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고,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옆에 있던 A씨의 남자친구는 "일정이 있어 못 간다"고 말했지만, 계속 오라고 설득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결국 A씨는 선물로 화과자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예비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A씨에게 "먹고살기 힘들어도 어버이날은 꼭 챙겨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선물 하나 사주고 마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욱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남자친구의 누나가 "어차피 화과자 다 못 먹지 않냐"며 "부모님은 단 걸 싫어하니 다음에는 다른 것을 사오라"고 한 것. A씨는 화가 치밀어 올라 웃음도 나오지 않고 그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를 두고 결국 A씨는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평소 A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남자친구는 돌연 "원래 엄마들은 다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예민한 상태였던 A씨는 "모든 엄마들이 그렇진 않을 거다. 부모 사랑 못 받고 큰 나도 알껀 다 안다"고 쏘아붙였다.
A씨는 고민이 많아졌다. 결혼을 하면 시부모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될지 걱정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남편이 자신보다는 엄마의 입장에 설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겁도 났다.
어린 시절처럼 다시금 서러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하나 싶은 두려움과 지금껏 혼자서도 잘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겹쳐지며 점차 결혼 생각이 사라졌다. A씨는 진지하게 남자친구에게 파혼을 제안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해당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다시 예전의 악몽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냐. 어쩌면 더한 지옥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면 결론이 금방 나올 것 같다", "힘든 세월 동안 똑똑하게 잘 자라신 것 같다. 더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라", "그 상황에서 나오면 보다 나은 미래가 다가올 거다", "결혼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 "사랑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시길 바란다" 등의 조언을 건넸다.
결국 A씨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남자친구와 만나 솔직한 자신의 입장을 전했고, 남자친구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었다.
남자친구는 엄마를 대신해 사과했지만 A씨는 "시집살이를 하기 위해 결혼하려는 게 아니다. 어머니께 직접 사과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이에 우물쭈물하는 남자친구를 보고 A씨는 이별을 고했다.
A씨는 "물론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괴로운 시간을 다시 보내고 싶진 않다. 자취방에서 기뻐서 울었을 때 잘 살자고 마음먹고 진짜 열심히 살았다"며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안 되니까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사는 거 아니겠냐. 억울하고 아까워서라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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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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