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전 정무수석, 임종헌 재판서 靑 논의상황 상세히 증언
재판장 "판결 늦출 수 있다 판단했나…삼권 분립 침해" 질타
박근혜 정부 시절의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과거 박 전 대통령에게 "외교부가 대법원을 접촉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은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2013년 11월 당시 청와대에서 오간 논의 내용을 증언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해 11월 15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수석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확정될 경우 한일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이에 외교부 출신인 박 전 수석도 나서 "대법원 판결이 이대로 확정되면 큰 혼란이 오고, 일본은 우리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포기하는 거로 받아들이게 되니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거들었다.

박 전 수석은 이 발언 경위에 대해 "일단 재판을 늦춰서 시간을 벌고 독일식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노력해서 재판을 다소 늦추게 되면 일본도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한다'고 평가할 것이고 그 경우 재단 설립에 대한 협조를 끌어내기 유리하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대법원 접촉 방법'에 대해선 "청와대나 총리실이 직접 대법원에 얘기하면 소문이 나니, 소관 부처인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서 다소 재판을 늦추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은 자신의 건의에 박 전 대통령이 "그게 낫겠네요"라고 동의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정홍원 총리에게 "이 문제가 중요한 것 같으니 총리님이 잘 챙겨주시라"고 당부했고, 정 총리는 "내려가는 대로 외교부 장관에게 지시하겠다"고 답했다고 기억했다.

박 전 수석은 다만 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돼야 한다거나 2012년 결론을 뒤집어야 한다는 등의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의 증언을 듣던 재판장은 직접 나서 "증인은 외교부 등이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 전 수석은 "그건 아니고, 외교부가 주무 부처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판결을 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고 다만 '외교부가 노력해야 한다', '시간을 좀 벌어서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다급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재판장은 이에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추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이 삼권 분립이나 사법부·재판장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나"라고 언성을 높였다.

박 전 수석은 미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한편 외교부에서 강제징용 재판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황모 전 과장은 이날 오전 증인으로 나와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 제출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재판거래에 연루됐다는 걸 알고 실무직원들이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마음이 착잡하고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황 전 과장은 또 "나중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외교부 장관과 대법관을 불러 회의했다는 얘길 듣고 놀라서 '그런 식의 회의가 가능하냐'고 물은 기억이 있다"고도 증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