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학교 공간에서 '학급'을 의심하라
학교를 12년간 다닌다면 대략 인생의 7분의 1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생활하는 곳임을 감안하면 7분의 1이 아니라 4분의 1쯤 지낸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드라마 ‘SKY 캐슬’을 보며 그 병폐에는 공감해도 정작 학교라는 공간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교육청은 학교를 특수한 시설이라며 오랫동안 획일적으로 관장해 왔다.

늦기는 했지만 학교 건축 공간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매년 17개 시·도교육청별로 10~20개교씩 선별해 5년간 1250개 교실 공간을 혁신한다고 한다. 쾌적하고 안전하며 미래 지향적인 학교 공간으로 만들어 학생과 교사가 사용자에서 주인이 되게 하겠다고 했다. 학교 공간을 재구성하는 사업의 이름도 ‘학교 공간혁신’이다. 돌봄이 필요한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돌봄교실을 두며 학교에 제대로 된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의 계획에는 새로운 이름이 많이 등장했다. ‘놀이학습교실’ ‘융합교육교실’ ‘협력학습실’ ‘첨단미래교실’ ‘메이커스페이스’…. 모두 오늘날의 감각을 살린 이름이다. 종래의 일반학교와는 달리 교과 과정의 특정 주제를 조별 토론한 결과를 평가하는 ‘미래형 혁신학교’도 있고, 서울교육청은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교실을 ‘꿈을 담은 교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수많은 학교가 긴 복도에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교실을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놓아 획일적이 된 데에는 훨씬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학교의 교육과 조직이 기본적으로 ‘학급(學級)’에 근거한다는 사실이다. 학급이란 한 교실 안에서 같은 수업을 받는 학생 집단을 말한다. 학급은 학교를 구성하는 집단이며 거대한 교육행정 조직의 단위다.

그런데 학급은 근대 학교에서 시작한 특유한 조직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학교 공간 개선을 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래 학급이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최저의 비용으로 지식을 전달할 목적으로 고안됐다. 학급은 나이가 같은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독립된 공간에서 한 사람의 담임교사 밑에서 1년 동안 변함없이 배우게 하는 교육 제도다. 학년이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1년 전과는 다른 독립 공간으로 옮길 뿐이지 새로 편성된 학생들과 지내는 자기완결적인 생활의 장은 계속된다.

학급을 영어로 ‘클래스(class)’라 부른다. 이는 학교시설·설비기준령의 ‘보통교실’이라고 하는 학급 공간에서 학습의 정도를 단계화하고 학생들을 경쟁시키고 학습 능력을 등급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학교 공간은 분류 위주인 근대 교육제도와 연동하고 있다. 이래서 학교의 원리와 공장의 원리는 같다.

보통교실을 일반교실이라고도 하는데 그 크기를 산정하는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학급당 수용인원은 통계 자료로 추이를 분석해 정한다. 한국공업규격에 따른 1인용 책상과 의자를 인원 수에 맞게 가로 세로로 배치하고 이에 인체 치수에 맞는 통로 폭을 대입하면 그 크기는 30분 안에 계산된다. 단 법적으로 학급당 실면적 기준은 66㎡ 이상이다. 그래서 학교 규모가 다르고 학생 수가 달라도 교육 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학급이라는 표준화된 공간 단위의 모양과 배치는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게 돼 있다. 여기에 1990년대 도입된 ‘표준건축비’로 학교 건축을 하고 있으니 거의 모든 학교가 똑같게 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의 당위성을 나타내는 개념이 지나치게 거창하다. 네트워크와 빅데이터의 미래사회, 생명의 존엄성을 체험하는 학습장, 교육자원을 공유하는 거점, 기계와의 초연결을 통한 유비쿼터스 공간, 참여와 자치의 공간, 생명체가 상호작용하는 친환경 생태 공간, 학생들의 몸을 통한 표현과 생산적 활동의 장 등.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말들은 모두 모아 놓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몰라서 학교 건축이 획일화된 것은 아니다. 획일적인 학교 공간 뒤에는 근대교육의 근간인 ‘학급’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 제도와 경직된 건축 제도가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한다는 논거는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