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유발인자, 뇌 축적 막는 게 아니라 배출…치매 치료제 방향 바뀌었다"
“치매 치료제 연구는 그동안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세포 사이에 축적되는 걸 막는 게 주를 이뤘어요. 앞으로는 축적을 막는 게 아니라 배출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갈 전망입니다.”

류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54·사진)은 치매 치료제의 미래를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치매 치료제는 최근 바이오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국 바이오젠이 임상 3상을 하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아두카누맙의 개발 실패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두카누맙은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축적되는 걸 막는 기전으로 연구됐다.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뇌 속 타우 단백질의 인산화(물질에 인산이 붙는 반응)도 치매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이 역시 베타아밀로이드 축적과 관련 있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돼 생기는 플라크(덩어리)가 타우 단백질 인산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을 막는 기전의 치매 치료제 연구는 아두카누맙처럼 실패를 거듭해왔다.

류 단장은 “과거 연구자들은 뇌에 림프관이 없는 줄 알았지만 5년 전 뇌에도 있다는 게 밝혀졌다”며 “베타아밀로이드를 림프관을 통해 배출·순환시켜 축적을 막는 기전의 치매 치료제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대 생물학과를 나온 류 단장은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과대학 연구교수, 미국 보스턴대 의과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그동안 발표한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은 120편 이상이다. KIST 뇌과학연구소가 지난해 보스턴 의대와 연구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최근 KIST 단장을 맡게 됐다. 보스턴 의대 교수직도 유지하고 있다.

치매는 가족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상이 치매에 걸렸으면 자손도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손이 손놓고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건 아니다. 류 단장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은 치매에 걸리고 다른 한 명은 걸리지 않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일란성 쌍둥이 같은 사례가 왜 생겼을까요. 생활습관과 환경이 그 사람의 유전자 발현 방식을 바꾼 겁니다. 쌍둥이의 생활 환경을 조사해보니 한 명은 살충제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이때 유독물질에 노출된 게 치매 유발 유전자를 활성화한 거죠.”

요컨대 특정 유전자가 발현될지 여부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이다. 류 단장은 “외부 자극 때문에 특정 유전자가 발현된 경우라면 그걸 거꾸로 돌리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크론병은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에 발병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내면 크론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매도 후성유전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류 단장은 “노화와 스트레스는 치매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며 “평소 적절한 운동을 하고 독성, 알코올 등을 멀리하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해 노화와 스트레스를 예방하면 치매를 늦추거나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