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ILO 협약 비준 논의도 '답정너'인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가 노사 합의 없이 공익위원이 마련한 방안을 발표하면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지난 7월 출범한 노사관계위가 논의의 장(場) 역할을 해왔다. 노사관계위는 노동계 의견을 수렴한 1차 논의 결과를 지난해 11월, 사용자 측 의견까지 감안한 2차 논의 결과를 이달 15일 발표했다.

조직이나 부서의 명칭에는 역할과 기능을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은 당사자들이 바꿔나가야 바람직하다. 당사자에는 노와 사, 그리고 중재자 및 당사자(공무원 노조의 사용자)인 정부도 속한다. 경사노위 전신은 그래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였다. 노사관계위의 발표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협약 비준은 노동계,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다.

관행은 그대로인데 제도만…

반면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 측 요구는 미미한 수준에서 반영됐다. 이해상충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노사관계에서 제도와 관행은 기업활동 여건, 노동시장 변화, 산업 변화 등에 발맞춰 개선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탄력성 약화는 기업·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노사관계위 발표에선 ILO 협약 비준만 도드라져 보인다.

협약 비준이 해당국에 자율적 노사관계의 기틀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투쟁과 대립과 점거농성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노사부문 평가에서 최하위권으로 밀어내리고 있다. 관행 개선 없이 제도 마련에만 매몰된다면 노사 대등의 원칙은 기대난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노사관계가 마이너스임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들어 한국의 협약 비준을 유도하고, 이를 발판 삼아 아시아 국가로 확산시켜 통상우위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사관계위가 작명 취지에 맞게 ‘사용자는 착취, 근로자는 피착취’라는 노동관련법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각종 노동규제의 다이어트를 고민해왔다면 어땠을까. 관행과 제도에 대한 혁신 없이는 개선도 없다.

합의 불발로 당정 '핑퐁' 우려

노사정 합의는 제도와 관행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국회의 법제화와 사회적 여건 조성에 압력으로 작용해서다. 노사관계위는 협약 비준에 관한 합의에 실패한 채 공익위원 안으로 대체했다. 공익위원 안은 국회에서 법안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러니 ‘노사 대립, 정부 중재, 중재 실패, 국회 이관, 여야 대립, 다시 정부 이관’이라는 ‘핑퐁’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르다면 6월의 ILO 창립 100주년과 관련해 당청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변수 하나뿐이다. 한 노동전문가는 “노사정 논의 중 정부가 ILO 협약 비준 당위성을 알리는 광고를 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경사노위는 산하에 특별위원회, 의제별위원회, 업종별위원회를 두고 경제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현안들을 논의 중이다. 한 노동법학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하는 ‘답정너’가 지속될까 걱정했다. “답(노동존중)은 정해져 있어. 너(기업, 사용자)는 따라오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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