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을 끌어안는 데 성공했고, EU는 중국 시장에서 실속을 챙기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21차 중·EU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시장 개방 확대 등을 담은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중국은 유럽 기업이 중국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 이전 강요도 금지하기로 했다. 국유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 보조금도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한 범위 내에서 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측은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과 EU의 유럽·아시아 연결 프로젝트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리 총리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유럽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중국 내 외국 기업의 불만을 처리하는 분쟁 메커니즘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은 EU가 중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오면서 50시간의 실무협의 끝에 가까스로 도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그동안 중국이 말로만 시장 개방을 약속할 뿐 실제론 이행하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중국은 미국과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EU와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우선주의에 EU와 함께 맞선다는 명분을 얻는 대신 EU의 요구 사항을 상당폭 들어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