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가 구겨졌다. 그것도 국가 의전의 최고 전문가집단을 자부하는 외교부에서다. 지난 4일 한·스페인 첫 전략대화 자리에 세워놓은 주름진 태극기를 보는 국민의 자존감도, 나라 품격도 바닥에 떨어졌다. 같은 시각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외교업무의 특성상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니 더 어이가 없다.

나사 빠진 외교·의전 사례는 두 손으로 꼽기도 모자란다. 외교부는 체코를 26년 전 국명인 체코슬로바키아로 표기하고, 발트 3국을 발칸 3국이라고 부르는 오류를 저질렀다. 청와대 의전팀은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엘리베이터를 못 잡아 정상들 단체 기념촬영에 빠지게 만들더니,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하고 음주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국가 브루나이에선 건배 제의를 하게 했다.

이에 대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직기강 해이’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수가 잦으면 그게 실력이다. “기본기와 전문성이 결여된 코드 위주의 아마추어 인사와 외교부의 집단 무기력증 탓”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국격(國格)이 구겨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보도에 대해 여당 대변인이 ‘검은 머리 외신’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매국적 행위’ 운운하며 공격한 것은, 전 세계 언론계에 한국이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인종차별을 배격하는 나라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외신기자들은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외국인 사장을 감금하고 사무실 기물을 파손하는 행태도 나라 밖에서 보면 테러와 다름없다. 법치와 인권을 강조하면서 공권력이 조롱받고, 북한 인권에는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국제사회에서는 납득하지 못한다.

한국은 식민지배, 전쟁 잿더미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경이로운 나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외적 성장에 걸맞은 책임의식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내적 성숙은 턱없이 미흡하다. 국격은 긴 시간 축적돼야 하지만 훼손되는 것은 금방이다. 구겨진 태극기처럼 국격이 구겨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