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등 빅데이터 기반의 신기술·신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IT(정보기술) 강국’으로 평가받던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는 ‘데이터산업, 데이터경제’를 좇고, 정부도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현실은 지지부진하다. 한경의 심층분석 ‘규제에 꽁꽁 묶인 데이터경제’(4월 2~4일자)는 글로벌 변혁기에 빅데이터 활용을 못 하고 있는 딱한 현실을 다뤘다.

미래산업의 보고인 빅데이터가 방치되고 있는 것은 철옹성 같은 규제장벽 탓이다.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장기 보류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소위 ‘개·망·신 법’이 최대 진원지다. 문제의 절박함에 눈 감은 국회와 정부 탓이 크지만, ‘개인정보는 무조건 보호돼야 한다’는 일부 사회단체의 반대도 큰 걸림돌이다. 개인정보 보호가 환경보호, 금산분리처럼 논리와 과학이 통하지 않는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굳어질 판이다.

빅데이터는 ‘현대판 노다지’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래의 석유’라며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오·의료산업에서도, 핀테크 분야에서도,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도, 초·중·고 및 대학 교육에서도 제대로 활용할 길이 없다. 네이버 카카오 등 많은 기업이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지만 달려나갈 수가 없다. ‘개·망·신 법’의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8개월 전 한 행사에서 “기업이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데이터산업도 전폭 지원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의 언급이 무색할 지경이다.

개인정보의 오·남용에 대한 예방도 필요하다. 쌓인 개인정보로 ‘빅브러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경고도 일리는 있다. 이 문제는 가공정보·익명정보 등 엄격한 비식별 정보화로 풀어나갈 수 있다. 미국 등 많은 선진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정부부터 공공 데이터를 제대로 공개해야 한다. 국세청의 사업자 정보, 경찰의 교통·차량 정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 정보 등 비식별로도 활용할 데이터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전자정부 3.0’이라며 대거 내놓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이대로는 혁신성장도 헛바퀴 돌리기다. 쌓여가는 빅데이터를 방치한 채 언제까지 ‘자원빈국’ 타령이나 할 텐가.